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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리버 스톤 ‘파괴자들’, 화끈한 액션에 담은 정치학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숫자 3.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 수학에선 홀수로선 가장 작은 소수. 철학에선 정-반-합을 가리키는 변증법의 수. 기독교에선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완전수.

영화에서도 3은 매력적인 숫자다. 일단 극영화에서 갈등과 화해, 협력을 이루는 가장 최소 단위의 인물구성이다. 많은 드라마가 주인공인 프로타고니스트와 대립자 안티고니스트, 그리고 조력자에 의해서 진행된다.

대개는 젊은, 남자 2명과 여자1명으로 구성된 ‘3인조’도 영화 속에서 문제적인 ‘패거리’가 돼 왔다. 일단 젊은 남자 2명에 젊은 여자 1명이 끼어들면 묘한 성적인 긴장감이 생긴다. 한발 더 나아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청춘 셋이 모이면 위험해진다. 사회에 반하는 가치관이나 목적을 갖고 있을 경우 더욱 그렇다. 


31일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신작 ‘파괴자들’의 주인공도 2남 1녀의 3인조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휴양지 라구나 비치. 20대의 두 남자 벤(애론 존슨)과 촌(테일러 키취), 그리고 이들의 여자친구 오필리어(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젊은 한때를 만끽하며 한 집에 살고 있다. 벤과 촌은 고교 동창으로 최고급 마약을 재배, 판매하며 큰 돈을 벌고 있다. 환상의 짝이다. 벤은 명문대에서 경영학과 식물학을 전공한 엘리트이고, 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군 출신의 갱이다. 벤은 전공을 살려 다른 조직들이 흉내낼 수 없는 고급 마약 재배와 판매망의 운영을 담당한다. 촌은 ‘무력 담당’이다. 조직간의 싸움에 휘말리거나 거래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엔 총을 들어 해결한다. 지적이고 평화주의자이면서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벤과 다혈질에 거칠고 야생마같은 촌. 오필리어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 벤과 촌도 기꺼이 한 여자를 공유한다. 

그런데 잔인하고 냉혹하기로 소문난 멕시코의 거대 마약 조직이 벤과 촌의 마약 및 판매망을 노리고 동업을 제안한다.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협박이고 강탈이나 다름없는 거래다. 두 청년은 거대 조직을 향한 전쟁에 나선다. 범죄조직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기생하는 부패 형사(존 트라볼타), 적에 대한 고문과 참수를 주저하지 않는 냉혹한 행동대장(베네치오 델 토로), 피도 눈물도 없는 멕시코 마약 조직의 여성 보스(셀마 헤이엑)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빠르고 화끈한 액션을 보여준다.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간의 수싸움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감 넘치는 이야기로 풀어가는 솜씨도 거장의 작품답다.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소설 10에 꼽힌 돈 위슬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극중 양측의 싸움은 오필리어를 인질로 잡은 멕시코 조직과 상대 보스의 여대생 딸을 납치한 벤-촌 일당의 대결로 절정에 이른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정치적 메타포도 읽힌다. 미국 문화의 맥락에서, 지적인 자유주의자 벤은 민주당적인 캐릭터이고, 상대를 응징하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촌은 공화당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멕시코의 조직과 대항해 최첨단의 작전을 구사한다. 반면, 멕시코의 마약 조직은 고문과 참수를 일삼는 야만적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양측의 싸움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국이 개입하거나 수행한 전쟁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멕시코의 마약조직은 ‘참수 동영상’으로 상대를 협박한다. 중동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를 그대로 불러온 설정이다. 이 맥락대로라면 미국이 수행한 전쟁은 ‘세계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돈’을 위한 마약 조직간 세력 다툼이나 별 다를 게 없다.

이 영화에서 3인조는 세상의 법과 도덕,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무법자들이다. 극중 여주인공 오필리어는 자신들을 가리켜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들 같다고 이야기한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1890년대 전설적인 총잡이들인 부치 캐시디(폴 뉴먼)와 선댄스 키드(로버트 레드포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극중 두 짝패에 에타(케서린 로스)가 가세해 3인조로 은행털이를 한다. 2남1녀 3인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줄 앤 짐’이다. 두 남자 줄(오스카 웨너)과 짐(헨리 세레),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여인 카트린(잔 모로)의 관계를 담은 드라마다. 셋은 늘 뭉쳐다니지만 사랑이 그들을 갈라놓는다. 독일영화 ‘에쥬케이터’에서 얀(다니엘 브륄)과 피터(스티페 에르체그), 그리고 여성 율(줄리아 옌체)로 이루어진 3인조는 ‘가진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무단침입 및 기물파괴를 일삼는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은 매튜(마이클 피트), 테오(루이스 가렐), 이사벨(에바 그린) 등 세 남녀의 기이한 사랑을 통해 당시 기성체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보여준다.

한국영화에서도 2남 1녀 3인조의 활약이 그려진 사례가 꽤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다. 문성근, 이경영, 심혜진이 주연을 맡아 내일없는 청춘의 비극적 삶을 풍자적으로 보여줬다.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2편도 범죄와 연루된 3인조를 주인공으로 했다.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송승환, 이승철, 나현희, ‘3인조’의 이경영, 김민종, 정선경이 그 주연배우들이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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