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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디자인 코리아> 흙밭 뒹굴며 플로어 누비며…삶을‘리디자인’하는 사람들
<3·끝> 이젠 樂-테크 시대다
아마 럭비동호회 ‘하카’ 소성호씨
“땀으로 범벅된 순수한 나와 만남
넥타이에 조인 일상 한번에 날려”

살사로 잠자던 열정깨운 박선영씨
“무대선 깐깐한 박과장 온데간데…
스트레스 날려주는 힐링 댄스”




“취미가 뭐예요?”라는 말은 이제 더는 마음에 들지 않는 소개팅 상대에게 던지는 ‘시간 때우기용’ 질문이 아니다. 지난 세기의 취미가 텅 빈 시간을 메우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취미는 시간을 비우고 그 안에 자신을 채우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내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미다.

취미를 가진 사람이 행복하고, 그런 사람이 많아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삶을 새롭게 디자인해 보다 가치 있는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성공을 위해 질주하고,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취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소성호(37) 관세법인 에스유 팀장은 취미를 통해 온전한 자신을 만난다고 말한다. 그는 주말이면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터프한 럭비 선수로 돌변한다. 소 씨는 2006년 럭비를 좋아하는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 6명이 모여 만든 ‘하카’의 창립 멤버다. 하카는 뉴질랜드 원주민이 전쟁에 나설 때 펼치던 의례로, 현재 뉴질랜드 럭비대표팀은 경기에 나서기 전 ‘하카’ 퍼포먼스를 하는 걸로 유명하다.

현재 하카를 통해 럭비를 즐기는 인원은 대략 25명으로, 럭비 엔트리(15명)대로 팀을 나눠 연습 경기를 펼치기엔 부족하다. 구성원끼리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준비한 장비도 정식 선수들에 비하면 초라하다. 그러나 소 씨에게 중요한 건 럭비 그 자체다. 몸으로 부딪치고 흙바닥에 뒹구는 동안 팀장이란 직책과 가장이란 부담은 모조리 떨어져 나간다. 오로지 땀으로 뒤범벅된 자기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소 씨는 심지어 발목에 핀을 7개나 박아야 하는 큰 부상을 당하고도 럭비공을 놓지 못하고 있다. “소리를 지르며 45분을 뛰고 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몸은 흙투성이에 여기저기 밟히고 맞아서 성한 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기가 끝나면 서로 악수하며 맥주 한잔 들이키죠. 그런 남자의 끈끈함은 맛보지 않으면 짐작도 못할 겁니다.” 소 씨는 마흔 살까지만 럭비를 하겠다고 부인과 약속했지만 아무래도 ‘기분 좋은 거짓말’이 될 것 같다며 웃는다.

취미는 자신의 인생을 돋보이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이우리(26ㆍ여) 충무아트홀 사원은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부전공한 경력을 살려 2011년부터 서울시의 후원을 받아 세종문화회관이 진행하는 ‘세종나눔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취미에 빠지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일도, 사람도 잊고 오직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 소성호 씨는 럭비를 하며 땀을 쏟으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나간다고 말한다. ‘하카’ 소속 동호인들이 운동장에서 연습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하카]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이 씨는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런 바쁜 일상이 쳇바퀴처럼 굴러갈수록 공허함은 커졌다고 말한다. 그 공간을 음악이 채웠다. 또래부터 50대 은행 지점장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이 씨는 삶의 열정을 깨닫는다.

늘 아트홀 백스테이지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않았던 이 씨는 아무리 피곤해도 연습이 있는 금요일 저녁이면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꿈나무 오케스트라와 함께 송년 연주회를 하거나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평소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 분들께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는 기쁨은 덤이다.

취미로 이어진 인연이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4년 전부터 살사를 배우기 시작한 박선영(28ㆍ여) 씨는 우연히 찾은 살사 바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3년 열애 끝에 지난해 11월 결혼한 박 씨는 지금도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댄스화를 신고 플로어를 누빈다. “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던 친구들도 남편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러워하는데요.”


박 씨가 찾은 건 인생의 반려자뿐만이 아니다. 박 씨는 살사를 통해 자신감과 웃음을 되찾았다.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박 씨는 평일 업무에 매진할 땐 깐깐한 과장님이지만 살사 바에만 들어서면 미소가 가득한,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한다. 들러붙은 스트레스와 군살도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사이 사라진다. “몇 시간씩 춤을 추면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정신은 맑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지루할 때 살사 음악을 들으면 확 깨어나죠.” 살사는 그녀에게 치료약이었다. “질릴 때까지 살사를 계속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 같아선 절대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들처럼 자신만의 취미에 푹 빠진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한다. 걱정하지 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이 커다란 행복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그 사이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라고.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사진제공=세종나눔앙상블, 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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