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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드라마ㆍ영화 속에 드러난 돈의 양면…그 본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장10절)

‘이 세상에다 재물을 축적하는 것은 언제든지 썩어 없어져야 할 가작지법(可作之法)이다’(능엄경)

동서를 막론하고 돈을 경계하는 명언은 역사가 깊다. 내세관을 가진 수많은 종교에서 물욕은 곧 악행, 죄와 환치된다. 재물을 소유하고 축적하고 싶은 게 인간 본성이라면 재물욕은 원죄다.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 어렵다는 엄포가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금융경제가 고도로 발달하고, 자연과학이 종교를 압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어떤가. 돈은 경계가 아닌 경외의 대상으로 외피를 바꿨다. 돈은 재화와 서비스 뿐 아니라 공권력과도 교환가치가 충분할 것으로 현대인은 미뤄 짐작한다. 배금사상, 물질만능주의를 비꼬면서도 한번쯤 큰 돈을 쥐고 싶고 떵떵거리고 싶어 하는 게 인간 심리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돈을 다루는 이중적 태도다.

▶모든 악행의 뿌리 ‘돈’=SBS에서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 ‘돈의 화신’은 ‘돈’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지도층의 탐욕과 부패를 꼬집은 블랙코미디다. 드라마는 재벌 회장을 살해한 뒤 막대한 유산을 나눠갖는 일당과, 그 일당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회장 아들이 복수하는 내용이다. 극에 등장하는 직업군인 법조인, 언론인, 연예인, 의료인 심지어 사회복지시절 종사자까지 모두 돈의 노예다.

코미디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수백억대 재산을 노린 일당은 정의로울 것 같은 검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배우, 사회의 목탁인 줄 알았던 기자다. 이들에게 윤리와 도덕 따윈 없다. 회장의 부인을 정신병원에 감금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병원장 또한 돈이면 뭐든 처방하는 부패한 의사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회장 아들은 고아원에 들어가는데 고아원 원장 역시 후견인으로부터 돈을 긁어낸다. 고아원 원장의 이름은 ‘도간희(영화 ‘도가니’의 패러디)다. 주인공 이름은 불교의 순교자와 같은 이차돈(강지환 분)이다. 이차돈은 ‘너희에게 복수의 칼을 보내어 계약을 어긴 것을 보복하리라’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며 복수의 서막을 열었다. 법, 언론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이차돈이 공권력을 배제한 채 사적복수를 시작한다.

 
강지환(좌측부터/조태규/탤런트/영화배우),황정음(탤런트/가수),최여진(탤런트/영화배우),오윤아(영화배우/탤런트),박상민 (영화배우/탤런트)동서를 막론하고 돈을 경계하는 명언은 역사가 깊다. 내세관을 가진 수많은 종교에서 물욕은 곧 악행, 죄와 환치된다. 재물을 소유하고 축적하고 싶은 게 인간 본성이라면 재물욕은 원죄다.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 어렵다는 엄포가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금융경제가 고도로 발달하고, 자연과학이 종교를 압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어떤가. 돈은 경계가 아닌 경외의 대상으로 외피를 바꿨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김기덕 감독 영화 ‘피에타’에서 구원 받기 전 강도(이정진 분)의 직업은 채무자의 몸을 반불구로 만들어 보험금을 뜯어내는 사채업자다. 그는 원금의 10배를 물렸다. 진지한 예술영화든, 상업적 코미디드라마이든 돈에 관한한 추악하다.

나약한 인간이 돈 앞에서 광기와 욕망에 사로잡혀 ‘돈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곧잘 등장한다. 2007년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미 서부에서 유전이 발견된 ‘블랙러시’를 배경으로 시골 한 청년이 물질적 욕망에 타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석유업자와 교회의 결탁, 약탈과 파괴로 점철된 아메리칸드림을 비판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2011년 ‘투빅투페일’, 2008년 다큐멘터리영화 ‘돈을 법시다’에선 금융자본주의 속성을 파다 보면 결국 그 아래에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화제작 코엔 형제의 ‘파고’, 영국의 대니 보일 감독의 ‘쉘로우 그레이브’에선 결국 ‘돈’ 때문에 살인이 벌어진다. ‘파고’에서 빚에 쪼들린 자동차 세일즈맨은 돈 많은 장인에게 돈을 타내기 위해 아내 납치를 의뢰하고, 납치범들은 우발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쉘로우 그레이브’에서 절친한 친구 사이인 세친구는 돈에 눈이 멀어 회계사를 토막 내 뒷산에 묻은 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에게 칼을 꽂는다. 주연 배우가 이완 맥그리거가 칼에 찔리고도 돈을 독식하게 돼 씩 웃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뭐든 다 되는 만능해결사 ‘돈’=2007년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박신양 분)는 “돈은 힘”이라고 돈을 정의한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쩐의 전쟁’은 첫방송에서 “태초에 돈이 있었다. 최후의 심판 그날 돈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인류는 멸망해도 돈은 살아남는다”며 돈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돈이 곧 종교인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알린 것이다. “법보다는 주먹, 주먹보다는 쩐이 앞서는 세상이야” “남자는 상처를 남기고, 돈은 이자를 남긴다” 등 돈에 관한 갖가지 명대사를 남겼다.

본격적인 기업드라마를 표방한 2011년 ‘마이더스’에서 펀드매니저인 주인공(장혁 분)은 돈의 힘을 맹신하다 돈에 배신당한다. “법이 돈에 지배를 당하면 추악한 탐욕만 남게 되어버리니까요”란 장혁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SBS 월화드라마 ‘야왕’에서 돈은 대통령 후보 단일화도 이뤄낸다. 재벌가 며느리 자리에서 쫓겨난 악녀 주다해(수애)는 석태일(정호빈 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데, 선거자금은 한때 시아버지인 백학그룹 회장(이덕화 분)에게 협박, 갈취해서 확보한다. 다해는 50억원을 유력 후보에게 건네며 후보 단일화를 종용한다.


사랑, 우정, 희생, 헌신의 덕목조차 돈과 교환될까. 2000년 ‘가을동화’에서 청순했던 송혜교는 재벌2세 원빈으로부터 “얼마면 돼, 얼마면 되는 데?”라며 사랑을 돈으로 거래할 것을 제안받는다. 13년이 지난 현재 SBS 수목드라마 ‘그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는 재벌 상속녀가 되어 78억 사채빚 때문에 오빠 행세를 하는 가짜 오빠(조인성 분)를 시험에 빠지게 한다. 조인성은 사랑이냐 돈이냐를 두고 갈등한다. 사랑과 돈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체가 과거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셈이다. 올해 초 종영한 ‘청담동 앨리스’에서 문근영은 얘기한다. 재벌 회장을 잡기 위한 마음이 너무 추하지 않냐는 말에, “추한 사랑도 사랑이에요”라고. 사랑과 돈은 결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가치란 현실 인식이 더 공감을 얻는 세상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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