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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금요일 아침, 당신의 하루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일상 뒤 숨겨진 기상천외한 이야기
프랑스혁명 후 하루 단위 24시간에서 10시간으로 바꿔
수세식 화장실 갖췄던 고대 도시 하라파
‘악마의 음식’에서 서양의 주식으로 신분상승한 감자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우리는 흔히 구석기시대 동굴 원시인은 짐승소리를 내며 이상한 행동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말을 했고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지능이 높았으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았다. 핸드폰을 작동하거나 차를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고대인의 생활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아즈텍인들이 먹던 걸 전 세계인이 즐기고 청동기시대 투탕카멘왕이 입던 아마포 속옷과 비슷한 린넨 옷을 걸치고 다닌다.

영국의 역사평론가 그레그 제너는 우리 인류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됐는지 하루동안의 시간을 통해 인류의 생활사를 압축해냈다.
자명종 소리에 깨고 먹고 화장실에 가고 씻고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먹고 이를 닦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의 탄생과 역사를 추적한 것이다.
하루의 시작은 자명종 소리에서 시작한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 학생들의 지각때문에 자명종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일요일, 느긋한 아침에도 우리는 눈을 뜸과 동시에 시간을 확인한다. 시계에 표시된 숫자는 왜 그토록 중요한 걸까? 

사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그레그 제너 지음, 서정아 옮김/와이즈베리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건 사실 일정치 않았다. 종교적이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하루는 해가 뜨는, 즉 태양신 라가 하루의 일주를 시작하는 때부터 시작됐다. 4000년전 바빌로니아인들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인 해질녘을 하루의 시작으로 봤다. 자정을 하루의 끝으로 보는 관습은 고대 로마에서 유래했다.

1793년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프랑스를 장악한 급진주의 지식인들은 혼란한 사회를 재설계하겠다며,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진리로 받들었던 24시간제를 폐기하고 하루를 10시간 단위로 나누었지만 결국 18개월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혼돈을 피하고자 사용해온 약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시간개념을 갖기 시작한 껄까?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상에서 공존하던 3만년 전, 프랑스 도르도뉴 지역의 르 플라카르드 마을에서 발견된 독수리뼈는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독수리뼈에는 달의 위상이 변화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달력인 셈이다.

생리적 현상인 배설물 처리는 일상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변기 시트에 앉아 내용물을 비워내고 닦을 거리를 찾아 변기에 버린 뒤 물을 내리는 전형적인 오늘날 화장실 풍경은 사실 4800년전 인더스 강 계곡에 세워진 도시 하라파가 원조다. 변기 시트에 앉아 볼일을 보면 바로 하수도로 떨어지고 오수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흘려보내는 장치까지 있었다. 지금의 수세식 변기는 1775년 영국의 알렉산더 커밍스가 개발한 기계식 슬라이더와 S자 트랩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먹거리에 대한 탐색도 지나치기 어렵다.
서양의 주식인 감자는 1570년대에 유럽에 소개됐지만 초기에 잘못 이미지화되는 바람에 철저히 외면당했다.
1596년 스위스 식물학자 바후한은 감자에 솔라눔 투베로숨 에스쿨렌툼이란 학명을 붙였지만 자신의 저서에 감자를 기괴하게 묘사하고 나병 등을 일으킨다는 근거없는 내용을 실어 악마의 음식으로 취급했다.

감자의 명예회복은 프로이센의 전쟁 포로로 잡혔던 식물학자 파르망티에에 의해 이뤄졌다. 포로시절 내내 감자만 먹고도 튼튼한 몸이 돼 풀려나자 영양적으로 뛰어난 음식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파르망티에는 훌륭한 빵 대용품이란 사실을 알리기 위해 유명인사에게 감자요리를 대접한다든지, 왕실을 감자꽃으로 장식하고, 감자밭에 무장경비병을 세우는 등 청개구리 심리를 이용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식품의 보관기간을 늘린 통조림이 전쟁터의 산물이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씻는 행위, 목욕탕 문화의 원조는 고대 하라파인이다. 청결유지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하라파 도시의 근간은 곳곳을 관통하는 하수도였다. 하수도는 석고를 발라 방수기능이 있는 벽돌로 만들었다. 모헨조다로에는 세로 12미터 가로 7미터인 실내 대욕탕외에 도시 곳곳에 벽돌로 만든 직사각형 욕탕이 있었다. 지중해 섬 크레타인들은 온천수를 끌어들여 더운 목욕이 가능한 냉온 욕조를 갖고 있었다. 로마의 공중탕인 테르메는 히포카우스트라는 난방기술을 이용했다. 공중탕 바닥 아래에서 노예가 아궁이에 불을 때면 뜨겁게 데워진 증기가 돌을 쌓아올린 기둥 사이를 지난 다음 위로 상승해 공중탕 전체와 물을 데우는 원리였다. 냉온탕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매일 아침 휴대전화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업데이트는 되는 지구촌 소식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2000년전 로마제국에서는 정책이나 전투 상황, 재판 상황 등 주요 소식을 모아 악타 디우르나라는 일일 공고문으로 발표했다. 돌판이나 철판 한 개에 글자를 새겨 도시 중심지에 있는 포룸에 붙여놓았다. 제국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면 개인들은 일일이 노예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최초의 신문은 1605년 스트라스부르크 상원의원이었던 요한 카롤루스에 의해 발간됐다. 카롤루스는 신성로마제국 전역에서 수기로 작성된 보고서를 모아 만든 인쇄본을 1주일에 한 번씩 구독자 150~200명에게 배포했다. 독자는 귀족이나 왕족, 상인이 대부분이었다.
평범한 일상에 숨겨진 뜻밖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지만 저자의 위트 넘치고 거침없는 글도 읽는 재미에 한몫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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