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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계속되는 ‘긴급조치 9호’ 논란…‘불법이다’ vs ‘통치행위로 봐야’
-대법, 국가 배상 책임없다 잇단 판결
-하급심선 ‘국가 배상해야’ 반대 판단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박정희 정권 당시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탄압하는 근거가 됐던 ‘긴급조치9호’가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이 ‘과거사 반성’ 작업의 일환으로 긴급조치9호를 위반해 유죄를 선고받은 145명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는 등 무죄 취지의 긴급조치 위반 사범에 대한 재심이 잇따라 열리고 있으나 법원에선 판결이 엇갈려 주목된다. 1970년대 긴급조치의 발동을 불법으로 봐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는 반면, 여전히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와 당사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는 1978년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211일 동안 영장없이 구금됐던 문모 씨 등 2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3년 처분을 받았던 문 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긴급조치9호에 대해 잇따라 위헌결정이 나자 문 씨도 직접 명예회복에 나서 승소한 셈이다. 문 씨는 정부가 당시 불법 구금을 했다며 형사보상급도 지급받았다.

긴급조치9호는 1975년 5월 제정돼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개정이나 폐지를 요구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국민주권주의에 비추어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고, 집회·시위의 자유,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 내지 대학자치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문 씨는 무죄가 확정되자 그해 또 다른 긴급조치 피해자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4년여 재판 결과 대법원은 국가가 문씨 등에게 배상할 필요는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런 판결은 지난 2015년 3월 26일 대법원 판결이 기준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는 긴급조치 피해자인 최모 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서 국민 전체에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개개인에게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이흥권)도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최모 씨 등 32명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불법은 아니다’라는 앞선 대법원 판단을 인용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판결도 잇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광주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마은혁)는 지난해 2월 긴급조치 피해자 송모 씨의 1심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해당 재판부는 “대통령 1인의 판단으로 행해진 긴급조치 발령은 정치적 책임만을 추궁하는 국회의원의 입법행위와 동일시할 수 없지만 대법원이 국회 입법행위에 관한 법리를 무비판적으로 원용했다”고 꼬집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 김기영)와 대전지법 민사2부도 이와 동일한 취지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서 이런 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긴급조치 사건을 변호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대법원은 지난 2010년과 2013년 전원합의체에서 긴급조치 1호ㆍ4호ㆍ9호가 무효라면서 긴급조치가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고 긴급조치가 통치행위라 불법이 아니라 판단한데 대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검에 따르면 긴급조치위반으로 처벌된 사건은 현재까지 총 485건 996명이다. 대검은 이중 아직 재심 청구가 없는 420여명에 대해 재심 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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