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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B급 며느리’, 왜 감독 집안의 고부갈등을 보여줬을까?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영화 ‘B급 며느리’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아들이 리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선호빈 감독이 자신의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부갈등에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댄 이 생활밀착형 다큐물에 잔잔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아내 김진영은 가부장제의 며느리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어머니 조경숙의 잔소리에 밀리지 않고 할말을 다한다. “이 집안에 어른이 넷인데, 밥을 먹고 나면 왜 저만 설거지를 해야 하죠”라고 말하며 가부장제 문제를 과감하게 꼬집는다. 


이밖에도 그는 “시동생한테 존댓말 쓰게 하는 것부터 내가 다 바꿀거야” “내가 시어머니를 만족시키려고 결혼했나” “결혼 전에는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진짜 왜 그렇게 날 싫어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김진영이 아들을 낳자 시어머니가 손자를 보기 위해 아들 집을 자주 찾으면서 고부간의 갈등과 충돌은 더욱 잦아졌다. 김진영은 시어머니와 한바탕 싸우고 명절에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상황은 2년간 지속됐다.

며느리를 가부장제에 복속시키려는 시어머니와 가부장제를 벗어나려는 며느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리고 여기서 남편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해묵은 주제이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갈등 양상이 조금씩 다른 만큼 리얼리티로 풀어냈다는 점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B급 며느리’는 한국 가족문화의 한 단면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가부장제에 관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 시어머니가 결혼직전 예비 며느리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1시간 넘게 “결혼하면 고양이를 못키우니 정리해라”고 말한 것은 누가 봐도 예비 시어머니의 잘못이다.

그리고 그집 고모가 “시집가면 며느리들은 하인이야”라는 말도 매우 거슬린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음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 가부장제의 그늘이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부갈등에서 남편은 흔히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로 비유되곤 한다. 이 영화에서는 감독의 아버지가 인터뷰를 통해 남편 역할을 코치해준다. “엄마 앞에서는 아내 잘못이라고 하고, 아내앞에서는 엄마 잘못이라고 하며 기분을 맞춰주는 게 어떨까?”


김진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한다. “남편은 방관자나 국외자가 돼서는 안된다. 회피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 고부갈등의 당사자로서 적극 개입해 제대로 싸우든가, 중재하거나 해서 3파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개인과 개성을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남자에게도 길게 보면 좋을 게 없다. 하지만 당위와 현실은 다르다. 김진영과 조경숙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아닌 자연인으로 만나면 모두 건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롤플레이’에 돌입하는 순간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지난 4년간의 고부갈등 경험이 이들에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서로 넘지 말아야 될 선, 서로의 마지노선과 지뢰밭을 알게 된 것이다. 김진영 씨가 자발적으로 시집에 들어간 것도 이 교훈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 극장에서 상영중인 ‘B급 며느리’는 군데군데 넋두리에 그친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짊어져 온 모든 억압과 착취에 맞서겠다는 B급 며느리 ‘진영’ 씨의 노력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저장’될 것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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