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TAPAS]‘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과 존재의 조건
[헤럴드경제 TAPAS=이유정 기자] 말을 할 수 없는 여자 청소부와 실험실에 갇힌 양서괴물이 사랑이 빠진다면, 그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사랑은 조용하고 전위적이다.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이렇게 묻는다. “나도 그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쇠사슬에 묶인 채 매질당하는 괴생명체를 목격했을 때, 엘라이자가 그를 구하리라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다. 억압받는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엘라이자의 눈길을 훔친 괴생명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남미 원주민들에겐 신으로 숭상받았다던 그는 미국의 한 지하 연구실에서 고문당하다 해부될 위기에 처한다. 우주 개발이란 명목 뒤엔 이질적 생명을 혐오함으로써 꾀하는 질서, 그를 박해하는 데서 오는 우월감이 자리한다. 냉전과 차별이 극에 달했던 1962년의 미국. 영화가 상정하는 혼란의 시대는 손쉬운 폭력의 토양이 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그는 또한 온몸이 비늘로 덮인 푸른빛의 양서괴물이다. 인간의 이목구비를 띠지만 말은 알지 못한 채 그르렁 대며 심지어 위험하다. 폭압적인 미군 장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그와의 만남에서 두 손가락을 잃었고, 괴생명체의 거침없는 야성은 다른 짐승을 위협한다. 그런 그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리라는 상상은 웬만해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인간 못지않을 애틋한 사랑을 묘사한다.

엘라이자를 업신여기며 희롱할 뿐, 그녀의 수화를 결코 알아듣지 못하는 스트릭랜드와 비교해보자. 엘라이자의 간단한 수화를 다정히 따라 하고, 삶은 달걀과 음악을 즐거이 공유하는 괴생명체가 그녀에겐 훨씬 인격적인 존재다.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남성 스트릭랜드는 자신이 ‘신과 가장 닮았을 것’이라 자부하지만 정작 그는 영화 안에서 가장 소외된 인물로 남는다. 소수자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이에게 주어진 운명은 고립과 파멸뿐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물론 괴생명체를 인격적으로 느끼는 것과 성적으로 욕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부분에서 퍽 귀여운(?) 장치를 고심했다. 괴생명체를 욕망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는 유수의 몬스터 크리처(creature) 디자이너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한다. “단순한 크리처가 아닌 영화의 남주인공을 만들어달라”, “여성이 키스하고 싶은 입술과 각진 턱, 동그란 눈을 가진 핸섬한 외모” 등이 그것. 감독은 괴생명체에게 영혼과 인격, 감정을 불어넣었고 관객은 엘라이자의 욕망을 어렵지 않게 따라간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알다시피 이 모든 과정은 순탄치 않다. 흔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셰이프 오브 워터’를 일컫듯 영화는 꽤나 도발적이며 잔혹하다.

그러나 동시에 꿈꾸게 하고 희망하게 한다. 시대의 억압에 맞서는 존재를, 강자의 냉소에 도전하는 쾌감을. 엘라이자의 동료인 흑인 여성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중년의 게이 이웃 자일스(리처드 젠킨스) 등은 그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들을, 이들의 욕망을,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 편의 동화를 읊듯 보여줄 뿐이다. 존재의 모양을 궁금해할 뿐 그것을 규정하지 않는, 겸허한 질문의 방식으로.


/kula@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