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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필 어록, 노태우 대통령 후보 추대하며…“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슈섹션] 한국 현대정치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판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풍부한 은유와 비유를 통해 자신만의 어록을 수차례 남겨왔다.

다음은 생전에 김 전 총리가 남긴 주요 어록.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자의 반 타의 반(1963.2.25.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서면서)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1987.11.3. 관훈토론회)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년 10월.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 5·16은 역사 발전의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그 계승자이고,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에 해당된다(1993.5.16. 5·16 민족상 시상식)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1.1.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의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하자)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6.13.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요즘 세대교체를 자꾸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는 74세에 총리가 돼 4차 중동전을 승리로 이끌었다(1996.5.18. 대구 신명여고 강연)

줄탁동기(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로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에 나오는 글귀.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고자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으로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이 나옴)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5.29.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1997.12.3.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6.27.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덜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1998.10.16.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의 위치라는 게, 아무리 공동정권이라지만 ‘델리키트’하다(1998.10.25. 총리가 안다고 앞장서거나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리 왕성한 상상력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보를 좁히거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1998.12.15.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제 약속 불이행 우려 관련 자민련 중앙위원회 연수에서)

백날을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2000.5.2. 일주일만에 당사에 출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2001.1.9.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4·13 총선 때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박 대통령이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2005.10.28.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

김 전 총리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3김’으로 불리며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정치 일생을 걸었다. 516군사 쿠테타의 주역으로 공화당을 창당하며 정계에 입문한 김 전 총리는, 당시 권력 2인자로 부침의 세월을 보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된 1980년대 후반, 충청도를 기반으로 야권의 3축 중 한축을 담당했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을 모두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역활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매번 권력 투쟁에서 밀리며 ‘영원한 2인자’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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