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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자발적 비핵화는 3번 시나리오였죠”
지난해말 영화 ‘강철비’로 위기의 한반도 현실을 다뤄 화제가 된 양우석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조금만 더 지체하면 우리 민족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국민들과 이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화 ‘변호인’으로 히트친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
“‘북미 전면전땐 한민족 공멸’ 위기감 영화로 공유
분위기 급반전된 현실 놀라워”


“너무나 명확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감독 데뷔작인 영화 ‘변호인’(2013년)으로 단숨에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무서운 신인’ 양우석 감독은 차기작으로 북한 문제를 다룬 영화 ‘강철비’에 올인했다.

‘변호인’의 여운이 가실 무렵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약 3년간 한반도 정세를 천착한 끝에 양 감독이 내놓은 ‘강철비’에 영화계보다 학계가 더 뜨겁게 반응했다.

북한 전문가, 외교 안보 전문가, 군사 전문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철저한 현실 고증과 학문적 이론이 겸비된, 한 편의 잘 정리된 ‘국제정세 교과서’라고 평했다.

영화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급변 사태, 남한의 대통령 선거와 권력 교체, 북한 군부의 쿠데타와 핵무기 탈취 시도, 미국의 대북 전면전 검토, 북한 최고 지도자 신변 안전을 놓고 벌이는 남북한 군대의 극한 대립 등 한반도 관련 최악의 시나리오는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시나리오 자체가 양우석 감독의 트릭이다.

도저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 실제 한반도 안보 환경에 양우석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강철비’는 현실보다 몇 곱절 풀기 어려운 수십차 방정식으로 변한다. 그리고 나서 남북을 대표하는 두 주인공은 멸사봉공의 자세로 기어코 해법을 만들어낸다.

북한 핵실험으로 초래된 한반도의 위기를 우리 한국인은 과연 어떻게 넘어서 역사의 승자가 될 것인가, 아니 역사의 패자가 되지 않을 것인가.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양 감독은 3년간 ‘1000만 감독’의 에너지를 옴팡 쏟아부었다.
“‘이대로 가면 미국과 북한의 전면전이다. 이건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미국과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 외교 안보 전문가들의 발언이나 주장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양 감독의 입봉작 ‘변호인’은 1137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노무현 신드롬’의 기폭제가 됐다. 그로부터 만 4년이 지난 2017년 12월 개봉한 양 감독의 두 번째 작품 ‘강철비’는 445만명이 들었다. 전작의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손익분기점은 넘겼다.

그는 “‘강철비’에 아쉬움이 좀 남긴 한다”며 “‘조금만 더 흥행 요소를 갖췄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텐데’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하지만 작년 말 개봉한 것에 후회는 없다. 개봉 시점은 늦어도 2017년 말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데드라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영화 개봉 시기를 그 전으로 최대한 앞당겼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양우석 감독의 염원대로 2017년 12월 영화 ‘강철비’의 개봉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급변했다.
개봉 직후인 2018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고, 2월 평창올림픽에 남북이 함께 참가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후에도 3월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 및 독수리훈련 연기,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6월 북미정상회담 등 시대 변화를 예고하는 세기적 이벤트가 줄줄이 뒤를 이었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강철비’의 북한 최고지도자 급변 사태 시나리오가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영화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양우석 감독의 ‘최후통첩’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영화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사실적 정세 분석을 전하면 김 위원장이 최악의 선택은 피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감이 곳곳에서 포착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군부 강경파들이 남한 군부대를 공격해 빼낸 주한미군의 다연장로켓(MLRS)에 의해 암살 시도를 당한다. 북한 군부는 김 위원장에 대한 공격이 한미연합군에 의해 이뤄진 것처럼 꾸며 김 위원장을 제거한 뒤 정권을 탈취해 북한의 선군(先軍)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김 위원장 암살 현장에서 우연히 부상당한 김 위원장을 구해 남한으로 도피하는 캐릭터인 엄철우(정우성),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며 대북 및 미중러 외교를 주도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가 영화를 끌고 가는 두 주인공이다.


지난해말 영화 ‘강철비’로 위기의 한반도 현실을 다뤄 화제가 된 양우석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조금만 더 지체하면 우리 민족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국민들과 이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양 감독은 “탈북자들한테 양 감독은 북한에 가면 총살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최고 존엄을 암살시도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북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도발적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런 극한적 시나리오를 설정하면서까지 간절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살펴보다가 앞으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우리 민족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제가 보기엔 너무나 명확했다. 누구든 나서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도 하나의 언론이다. 영화를 만들어서 국민들과 이 위기감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 감독은 “‘강철비’ 때문에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 사회에 오랫 동안 깊게 형성된 안보 불감증이 너무 심각하게 느껴졌다. 북핵 위기로 초래될 북미간 전면전 등의 상황은 우리가 먼저 나서서 그 방향을 돌리지 못할 경우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컸다. 현실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걸 자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결국 홀로 외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찍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북한의 태도가 급변하면서 양 감독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정부의 주역들에게 경의감과 동병상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제가 영화적 상상력으로 ‘강철비’를 만들면서 그렇게 외롭고 먹먹한 심정이었는데, 정부의 외교안보 부처 주역들이 실제 현실에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장면이 전개되기 시작했다”며 “먼저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백척간두에 서서 어렵게 어렵게 남북관계를 이끌어나가는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먹먹한 심정일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돌아봤다.

양 감독은 이렇게 분위기가 반전되기 전, 북핵 위기로 초래될 한반도 위기의 결말을 크게 4가지로 정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미국의 북한 공격으로 초래될 전면전, 둘째는 대북제재를 통한 북한 내부 붕괴, 셋째는 북한의 자발적인 비핵화, 넷째는 한국 핵무장을 통한 북한핵의 지역핵화. 이렇게 4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봤어요. 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게 ‘1번’(북미 전면전). 그런데 지금 가장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 ‘3번’(북한의 자발적 비핵화)으로 가고 있죠.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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