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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랑 끝 사람들-④바꿔야 삽니다]“번개탄? 어디에 쓰시게요”…질문 하나가 생명을 살립니다
-번개탄으로 목숨 끊는 시도 매년 급증 추세
-“‘비진열ㆍ구입 사유 묻기’로 자살 예방 가능”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혹시 번개탄 있나요?” “저 쪽 왼쪽 코너에 가보세요.”

지난 12일 기자가 서울의 한 중소형 수퍼마켓에서 번개탄을 찾자 마켓 직원은 스스럼없이 번개탄이 진열된 위치를 알려줬다. 번개탄 진열 장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번개탄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직원은 구매 사유도 묻지 않았다.

번개탄이 일부 목숨을 끊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번개탄 판매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지 않는 판매점이 여전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일산화탄소를 이용해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는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8년 267건에 불과했던 일산화탄소 이용 사례는 지난 2015년 1820건으로 크게 급증했다.

번개탄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 지자체에선 자체적으로 번개탄 판매 방법을 개선하고 있다. 경기 화성 향남읍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번개탄을 진열하지 않고 보관함에 넣어두고 판매하고 구입하려는 손님에게 구입 사유를 꼭 묻도록 했다. 번개탄을 사는 사람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면 화성시 자살예방센터로 연락하도록 했다. 그 결과 매년 4~6명이었던 번개탄 자살 시도 건수가 지난 2015년과 2016년엔 각각 2명으로 줄더니 올해는 한 명도 집계되지 않았다.

경기 부천도 지난 2016년부터 번개탄 판매업소에서 번개탄이나 숯 등을 진열대에서 보이지 않도록 별도 보관하고, 구매자에게 “번개탄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세요?”라고 묻도록 했다. 아울러 판매점 안에 안내 책자와 부천시자살예방센터 연락처를 놓아두고, 의심이 가는 구매자는 곧바로 센터로 연락하도록 했다. 그 결과 부천에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지난 2016년 34명에서 이듬해 17명으로 50%나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번개탄 판매 방식에 따라 자살 예방 효과 차이가 큰 만큼 판매점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비진열 방식’으로 팔면서 구입 사유를 묻는 것만으로도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며 “판매점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자살예방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도 지난 8월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MOU를 맺고 번개탄을 전시하지 않고 주문이 있을 경우 꺼내 팔기로 했다. 아울러 24시간 상담 가능한 핫라인 번호(희망의전화 129)와 함께 ‘오늘 당신 괜찮은가요?’ 등 문구가 적힌 봉투에 넣어 판매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번개탄 겉포장에 자살 예방 문구를 의무적으로 넣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 번개탄 사는 것을 까다롭게 하고 겉포장에 자살 예방 문구를 넣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번개탄 제조업자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번개탄 겉포장의 자살 예방 문구 삽입은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에만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한국성형목탄협회는 산림청과 MOU를 맺고 포장지에 자살방지 문구를 삽입하는 등 판매행태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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