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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문재인의 파격외교와 케네디의 퍼스트맨
전례없는 도전이었다.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니.

“우리는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위험하지만 찬란한 도전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퍼스트맨’ 닐 암스트롱을 탄생시켰다. 그 도전의 목표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러시아와의 이데올로기전에서 이기기.’

2018년. 또 한 사람의 퍼스트맨이 있다. 분단 70여 년의 역사를 끝내고 ‘탈(脫)이데올로기’를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난 1월 극적인 남북 고위급 회담 제안에서부터 5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9월 남북군사합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제안까지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행보는 ‘파격적’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 대통령의 도전은 생각만큼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숨가쁘게 평화를 달려가던 한반도는 정체기에 직면했다. 긍정적으로만 보였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결국 불발됐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북측의 어떠한 피드백도 없는 상태에서 경호 예행연습을 하고 언론에 긍정적 신호를 던진 것도 청와대였다. 통상 실무회담에서 고위급 회담 등 정상적 외교절차를 거치지 않고 ‘북한이 내일 오겠다고 하면 내일 맞이하는’ 상황 준비에 전념했다.

청와대는 두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첫 번째,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이벤트성’ 답방은 항구적인 평화정착에 유의미한 결과를 던져주지 못한다는 것.

두 번째, 대다수의 국민이 김 위원장 가계와 북한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절차를 뛰어넘은 ‘비정상적’ 회담을 마냥 반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

역사는 하루 아침만에 이뤄지지 않는다. 당장 북미간 비핵화-상응조치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위험한 도박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원하는 제재완화도, 평화협정도, 무엇 하나 가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되레 국제사회에 의심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해야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모멘텀을 정체기에 빠트린 궁극적인 의제가 결국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또 서울 남북정상회담은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다를 수밖에 없다. 판문점이라는 중립지대와 평양이라는 ‘북한의 중심지’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통해 대다수의 국민은 ‘두 개의 한국’이라는 현실을 피부로 직접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을 환대하는 각종 의전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현실과 대비될 수 있고, 느닷없는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인정’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공식입장대로 시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하루 아침만에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파격적이기만 한 행보로 이뤄지지도 않는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음모론에 시달리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 그리고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통해 이뤄졌다.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 직후 제미니 1호에서부터 10호, 그리고 아폴로 1~10호까지 무수히 많은 실험과 연습, 그리고 희생을 거쳐 1969년 7월. 지구인의 달 착륙이 이뤄졌다.

전례없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흑인들은 백인 과학자들에게 복지예산을 빼앗겼으며, 여성들은 과학자 남편들을 위해 내조에 충실해야 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가 역사적 계획을 실행하던 그때,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아폴로 11호 계획이 실패해 우주인들이 사망할 경우와 성공할 경우를 전제한 기자회견문 2장을 준비했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문 대통령의 평화외교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 대통령의 2012년 대선실패 이래 학자ㆍ실무자들과의 꾸준한 의견교환과 한반도 구상, 그리고 대통령 취임 이후 일사분란한 외교행보에 있었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답방을 제안하기 전까지 문 대통려의 ‘파격’은 사실 파격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구상하고 연구하고, 외교를 지켜본 결과였다.

하지만 가장 어렵고 궁극적인 과제, 비핵화와 평화협정으로 가려면 보다 철두철미한 소통과 섬세한 외교, 그리고 소통이 필요하다. 연내 김 위원장의 답방은 무모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궁극적인 평화정착을 향해 걸어나가야 한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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