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팀은 물론 잘 나가는 대학팀들조차 눈길을 주지 않았던 한 선수가 A매치 1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바로 축구대표팀 주장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그 주인공이다.
‘작은 거인’ 박지성은 25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 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 준결승전에 선발 출전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 센추리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센추리클럽은 FIFA가 인정하는 국가대표팀 간 경기인 A매치를 100회 이상 뛴 선수 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국가대표팀이 한 해 치를 수 있는 A매치가 10회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철저한 자기관리로 10년 이상 꾸준한 기량을 보여줘야 달성할 수 있는 대기록이다.
한국에서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홍명보(135경기), 이운재(132경기), 이영표(126경기), 유상철(122경기), 차범근(121경기), 김태영(105경기), 황선홍(103경기)에 이어 박지성이 8번째다.
박지성은 100경기 중 축구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서만 14경기를 뛰었다.
박지성의 시작은 미미했다. 엘리트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박지성은 명지대 입학을 앞둔 1999년 2월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었던 올림픽 대표팀의 테스트 선수로 태극마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듬해인 2000년 4월5일 당시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라오스와 아시안컵 1차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당시에는 왜소한 체구에 실수투성이였던 박지성의 대표 발탁을 두고 여전히 말들이 많았다.
박지성은 이후 두달 뒤인 6월7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4개국 대회 마케도니아와 경기에서 A매치 첫 득점을 올렸다. 그해 9월 시드니 올림픽과 10월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도 출전했다. 그래도 박지성은 유망주 중 하나 정도로 여겨질 뿐이었다.
박지성의 축구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의 지휘로 월드컵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박지성은 한국축구 세대교체의 선두 주차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과 3차전(1-0 승)에서는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려 한국의 사상 첫 본선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4강 신화의 디딤돌을 놓았다. 박지성은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은 최연소 한국 선수가 됐다.
박지성은 이후 한국축구의 아이콘을 뛰어넘어 아시아축구의 자랑으로 급성장했다. 2006년 독일 대회, 주장 완장을 차고 뛴 2010년 남아공 대회까지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으면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큰 힘이 됐다. 미드필더인 박지성은 A매치에서 13골을 넣었다.
그 중에는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득점처럼 큰 무대에서 세계적 강호들의 골망을 흔들어 한국 축구사의 한 획을 그은 중요한 골들이 많다. 박지성은 독일 월드컵 프랑스와 조별리그(1-1 무승부) 동점골,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와 조별리그(2-0 승)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득점 기록도 세웠다.
또 아시아 선수 중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3골) 타이기록까지 갖고 있다.
새천년의 지난 11년 동안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빌 때마다 한국축구의 역사는 늘 그렇게 새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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