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이 있던 지난 1월 5일, 송승헌과 김태희는 일약 ‘안구정화커플’로 떠오르며 브라운관의 기대를 한 몸에 끌어모은다. 김태희의 승부수는 ‘터졌다’. 1, 2회 방송분을 통해 김태희가 보여준 것은 ‘이미지 벗기’였다. ‘새침하고, 여성스러우며, 도도하고, 우아’해서 안 그래도 공주님같은 김태희가 공주가 됐으니 어찌 보면 얄밉거나 재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태희는 달랐다.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며, 여신 김태희는 ‘망가짐’을 명분으로 털털한 ‘그녀’가 됐다.
동물원의 팬더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던 결과는 다름 아닌 폭풍눈물이었고, ‘고기는 언제나 옳다’는 대사 한 마디로 육식주의자들의 찬양을 받았다. 곧 이어지는 ‘폭풍설사’는 '탈' 김태희의 절정이었다.
드라마는 오로지 ‘김태희’였다. 공주가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엮어지는 에피소드란 공주를 끌어내리기 위한 술수, 공주를 증명하기 위한 고군분투, 공주가 공주가 아니어야 하는 상황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가 있었다. 스토리가 ‘뻔하디 뻔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결말로 나아가기 시작할 때 드라마에서 초반의 신선함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주님’이라며 끌어온 소재는 만화와 다름없었으며, 만화같은 드라마가 선택한 ‘공주님과 재벌 3세의 사랑’은 가히 비현실적이었다. 이 안의 디테일은 어설프고 조악했다.
먼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돌려말했다. 이설 공주가 아버지 문제로 아픔을 겪고, 그로 인해 오 관장(박예진)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그 와중에 ‘악역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명제를 실현하듯 이설의 언니 이단은 해맑은 공주님을 미워하고 또 미워한다. '사랑의 장벽'도 당연히 있다. 공주님과 재벌3세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역사와 함께 묵혀진 사안이었다. 이것은 또다시 왕세자였던 공주의 아버지 문제로 귀결된다.
지겹고 특별날 것 없는 구성은 이내 드라마를 처지게 만들었다. 극 초반 김태희로 인해 즐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대책없는 김태희는 망가짐을 불사했고, 그로 인한 묘한 쾌감은 신선했다. 그렇게 망가져도 김태희는 너무 예뻤다. 김태희는 ’연기력 논란’이 거듭되던 이전과 확연히 다르긴 했다.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이 드라마 안으로 작정이나 한듯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태희의 재발견’이라 칭송받던 것도 금세 한결같은 김태희에게 백기를 들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궁색한 ‘로맨틱 코미디’ 안의 김태희는 그저 ’우리의 프린세스’로만 남을 뿐이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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