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아파트에도 선물(先物)시장 개념이 도입돼 눈길을 끌고 있다.
2006년 판교에서 처음 도입된 공공임대아파트가 10년후 분양전환 시점에 앞서 분양가를 미래 정해놓고 사전예약을 받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신청자들은 현재 설정된 분양가가 2~3년후 분양전환 때 감정가보다 저렴하면 그만큼 싼 가격으로 내집마련을 할 수 있다. 반면 건설사들은 분양전환 시점에 앞서 목돈을 챙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민간임대에서 시행되던 분양가보장제가 공공임대에 도입된 셈이다.
■매매예약 합의제...아파트판 선물시장?
5일 국토부ㆍ성남시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의 ‘모아미래도’가 분양전환 시점인 2014년에 앞서 입주민을 대상으로 매매예약합의 신청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매매예약합의는 3년 뒤 분양받을 사람들이 정식 분양계약에 앞서 미리 분양권을 확보하기로 건설사와 합의하는 것이다.
모아건설은 지난 2월 25일~3월16일 매매예약합의를 신청한 입주자들부터 합의 이행 명목으로 매매예약증거금을 받았다. 이 증거금에 기존에 냈던 임대보증금, 잔금을 더한 금액이 분양 전환가격이라고 모아건설은 설명한다. 전용 81㎡기준층의 경우 증거금은 1억6300여만원으로 보증금 2억5400여만원, 잔금 1000만원을 합하면 분양가는 4억2800만원이다. 대신 매달 내던 임대료 61만원은 소멸된다.
이렇게 설정된 분양가는 3년후인 2014년 성남시가 지정한 2개의 감정평가업체가 산정한 감정평균가와 비교, 둘 중 낮은 금액이 최종 분양가로 확정된다.
만약 설정 분양가가 감정가보다 비싸면 건설사는 초과금액을 환불해준다. 이에 따라 신청자들은 최악의 경우라도 주변시세로 분양받을 수 있다. 하지만 판교와 인접한 분당의 전용84㎡ 실거래가는 5억원 이상이다.
3년 뒤에도 이런 시세 이상을 유지한다면 매매예약 신청자는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를 7000여만원 저렴하게 분양받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체 585가구 중 300가구 정도가 신청했다고 모아건설은 밝혔다.
모아미래도 외에 판교에 공급된 10년 공공임대는 현재 3000여 가구에 달한다. 입주민들은 나머지 단지들도 분양가를 보장하는 매매예약을 도입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방노블랜드 관계자는 “옆 아파트에서 주민들의 요구로 건설사와 매매예약 합의를 했다는데, 우리도 이같은 시스템을 건설사에 제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조건...관련 제도 정비해야
분양가보장제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매매예약을 결심하기까지 입주민들의 부담은 적지 않다. 또 합의를 안 하는 입주민은 절대적으로 불리해지는 구조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와 성남시는 ‘문제가 될 소지는 있다’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시급한 제도 정비가 요구되고 있다.
우선 매매예약 이행에 따른 증거금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입주민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됐다. 모아건설은 증거금 납부기한은 2월 25일부터 불과 20일로 잡아 전용81㎡ 입주민들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1억6300만원을 증거금으로 준비해야 했다. 만약 매매예약을 해놓고 납부기한을 넘긴다면 연14%의 연체료를 더한 금액을 내야 한다. 중도에 증거금 대출 이자가 버거워 예약을 취소할 경우엔 증거금의 10%를 위약금으로 물어야 하는 제약이 따른다.
모아건설측은 일단 ‘임대아파트 취지를 살린 분양가보장제’ 추가접수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자금마련이 어려운 입주자들에게 두번의 기회는 오지 않는 셈이다. 이에따라 2~3년후 아파트의 가격이 오를 경우, 매매예약을 한 입주자와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따라 미신청자들은 매매예약합의를 통해 증거금을 받는 것은 무효라며 성남지검에 고소했다. 매매예약합의는 사실상 분양전환인데, 전환시점인 2014년보다 3년이나 앞당기면서 성남시엔 신고조차 안 했다는 것. 당초 10년 공공임대는 10년간 임대한 뒤 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지만 서민들의 내집마련 시기를 앞당기고, 건설사의 공사금 회수를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2009년 임대의무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이에 2019년이었던 전환시점이 2014년으로 단축됐다.
설정분양가 산정 방식도 논란이다. 전용81㎡ 조성원가는 2억6600만원인데, 설정 분양가가 원가보다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다. 더욱이 입주 2년 만에 분양전환 시도하는 것은 5년 공공임대와 다를 바 없어 분양가에 조성원가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2년반 입주 후 분양전환하는 5년 공공임대는 조성원가와 감정가의 평균치를 확정분양가 상한선으로 책정한다.
하지만 이런 사항을 알고 있는 국토부와 성남시는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방향조차 못 잡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명 계약이 성립되는 관계라 입주민에 어떤 피해가 생길지 검토해야 하는데, 마땅한 법률적 근거를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시 관계자도 “10년 공공임대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 우리도 배우면서 업무를 보고 있어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태일 기자@ndisbegin> killpas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