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한마디 협의도 없이 무작정 법원으로 달려가냐...뒤통수 세게 맞았다.”(채권단)
중견건설사 LIG건설에 이어 12일 ’우리나라 건설면허 1호’인 삼부토건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를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에 따른 PF의 구조적 모순이 활화선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금융권은 미래가치를 보고 거액의 자금을 대출해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대출 회수 및 추가 담보 요구 등 철저한 리스크관리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반면 건설사들은 대출금 상환 유예와 회사 정상화를 위해 비밀리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양자 간의 리스크 떠넘기기가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시장을 이끌어가던 양대축인 금융권과 건설사 간의 기본적 신뢰마저 붕괴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시한 만료에 따른 제도적 기반의 붕괴 때부터 예견됐다. 이에따라 법령이 재정비와 함께, 부동산 시장의 건설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금융권과 건설사 간의 업종 간 상생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삼부토건이 법정관리 신청을 한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남창동 삼부토건의 본사.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건설사들 마녀사냥 억울...상생구도 절실= 잇따라 워크아웃ㆍ법정관리를 택하는 건설사들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뾰족한 대안이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일방적인 마녀사냥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기촉법 시한이 만료된 데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여파로 만기 연장이 이뤄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택할 선택은 법정관리가 유일하다는 것. 더불어 최근 PF사업에 대한 리스크를 지급보증을 한 건설사에 일방적으로 지우는 은행권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
시장의 호황기 때 경쟁적으로 대출에 나서던 금융권의 돌변한 모습에 배신감마저 느끼는 모습이다.
LIG건설 관계자는 “PF사업은 은행들이 사업성을 검토한 뒤 대출이 이뤄지는 건데, 사업이 부진할 경우 건설사가 떠안는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며 “잘 되면 수익은 같이 나누고, 리스크는 건설사가 더 많이 짊어져야 하는 게 현재 PF 사업의 구조적인 문제다”라고 토로했다.
삼부토건 관계자도 “이제껏 담보 요구가 없었는데 점점 금융권의 건설사 손봐주기가 심해지는 것 같다”며 “저축은행 때문에 만기연장을 안 해준다는데, 저축은행 부실을 건설사가 다 책임져야 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결국 건설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양측의 신뢰회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심화되면서 건설사들도 자구노력을 치열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이 무리하게 대출을 회수하거나 추가 담보를 요구하기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지 않는 선에서 유동성을 지원해주는게 사업적으로도 밀접히 연관돼 있는 건설업계와 금융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재권권 지키기 급급...금융권 격앙
건설사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삼부토건의 느닷없는 법정관리 신청을 두고 금융권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건설사와 금융권과의 신뢰는 더는 없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실제 삼부토건의 주채권은행인 농협마저도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회사측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삼부토건은 PF 주간은행인 우리은행과 대주단에 대해 내곡동 프로젝트파이낸싱(PF) 4270억원의 대출 만기 연장을 지속적으로 청했지만, 대주단은 삼부토건이 지분 95%를 소유한 자회사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등을 추가 담보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채권은행들 입장에선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대주주가 추가 담보를 설정하는 등의 충분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부토건이 은행들과 이같은 논의를 하던 도중 몰래 법정관리를 신청해버렸다는 것이 금융권의 설명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말소된 현 시점에서 대주단 중 일부 저축은행들이 워크아웃에 합의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경영권 방어를 위해 몰래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의혹의 시선을 금융권은 거두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누가 앞으로 건설사에 대해 대출을 해줄 수 있겠냐”며 “부실경영 책임에 대한 성의있는 태도는 보일 생각을 하지 않고 남아 있는 재산 지키기에 급급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워크아웃을 통해 자력회생하기 보다는 일단 손쉽게 경영권부터 지키고 보자는 식의 법정관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순식ㆍ박정민ㆍ정태일 기자@sunheraldbiz> 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