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유행이라도 오면 어쩌냐”…경기 회복 낙관 어려워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연합뉴스 제공]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내년에 아르바이트 직원 한 명 더 내보내야겠네요. ‘가족 편의점’ 방식으로 운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울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모(32)씨는 13일 최저임금 5.1% 인상(8720원→9160원)이 결정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씨는 “지금도 매일 9~10시간 일하고 있는데 얼마나 더 개인시간을 없애야 할지 모르겠다”며 “점주는 직원을 자를 수밖에 없고, 젊은이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현실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사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가까스로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가뜩이나 장사를 접어야 할 판에 최저임금까지 오르면서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도 최저임금 9160원에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 전망을 반영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다. 코로나라는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상황을 낙관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경영계가 식당.숙박 등 서비스업과 도.소매업 보호를 위해 요구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이 올해도 무산됐다. [연합] |
편의점 업계가 최저임금 인상을 거부하는 데에는 이미 한계상황이 다다랐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는 점주들이 근무시간을 늘리면서 인건비를 줄였으나,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아예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편의점 사장님들은 당장 어떤 직원들을 해고할 지 고민하고 있다. 편의점주가 모인 네이버 카페에서는 “오전 알바생도 내보내야겠다”, “본사에 심야 영업을 못하겠다고 항의하겠다” 등의 격앙된 반응이 올라왔다.
편의점 점주 수입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A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가맹형태, 점주 근무시간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평균적으로 점주가 가져가는 돈에서 인건비 비중이 40~45%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편의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편의점 점포당 월 평균매출은 4800만원인데 이 중 평균 매출이익 23%(1104만원)에서 알바비(650만원), 월세(200만원), 각종 세금 등을 제외하면 점주가 주 45시간을 일하고서 가져가는 순수익은 2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게다가 2016년부터 편의점 점포당 매출액은 0.9%씩 감소하고 있다.
편의점주들이 당면한 상황도 최저임금 반대 목소리를 키웠다. 유통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어 편의점도 배달에 힘쓰는 등 근무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홍성길 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최저임금에 경기회복 가능성이 반영됐다고 하지만 편의점은 상황이 다르다”며 “유통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배달·온라인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예전처럼 오프라인 매장에 인건비를 지출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된 12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내 상차림 식당들이 집단 휴점을 하고 있다. 이번 집단 휴점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과 수협의 임대료 정책에 대한 항의로 해석된다. 연합뉴스 |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근거가 된 ‘경기 회복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38)씨는 “7월 거리두기가 완화된다고 해놓고 지금 거리두기 4단계가 됐다. 식재료도 사놨는데 상심이 크다”며 “4차 유행이 왔는데, 5차 유행도 올 수 있지 않냐. 내년이 더 나을거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실질적인 후속 대책만이 최저임금에 대한 저항을 낮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갈비 전문점을 운영하는 정 모(60)씨는 “재난지원금으로 월세밖에 못내는 상황이라 정부 지원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본사도 지원책 마련을 위해 애쓰겠지만 한편으로는 왜 편의점 기업들만 매년 최저임금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건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고 말했다.
분노에 찬 자영업자들은 거리로 나올 예정이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14일 거리두기 4단계 불복 선언을 하고 국회 둔치 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진다. 비대위는 입장문을 통해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저임금 정책이 오히려 직원들에게 고용불안을 안기고 있다”며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쪼개기 고용 등의 열악한 고용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국장은 “근로자분들은 아쉽겠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견딜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다”며 “그나마 5.1% 인상에 그쳐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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