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교류 역사, 걸림돌은 우리의 막연한 편견 뿐”
집권 3기 시작한 모디…“적극적 외교 전환 고민할 필요”
“해외진출한다면 인도로…현지기업과 합작도 고려해야”
이준규 전 주인도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인도와의 협력은 당장 눈앞의 이익을 미시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 전략적 시각을 가지고 담대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준규 전 주인도대사(현 인도포럼 회장)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조속히 성사시키고, 다양한 다자 무대에서의 양자 정상 회담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부터 3년간 제14대 주인도대사를 지낸 이 전 대사는 2019년부터 인도포럼 회장을 맡아 한국과 인도의 가교역할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강남구 소재 자택을 방문한 취재진을 맞이한 이 전 대사는 인도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는 인도를 상징하는 코끼리 조각을 비롯해 인도의 정취가 담겨 있었다.
▶“2000년 교류 역사, 걸림돌은 우리의 편견 뿐”=한국과 인도는 반세기를 넘어 올해 수교 51주년을 맞이했지만, 양국 교류의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왕옥은 서기 48년, 16세의 나이에 인도에서 바닷길을 건너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락국 김수로왕과 결혼했다. 이후 양국은 불교를 통한 교류를 이어왔다.
인도는 1950년 6·25전쟁 시 의료지원 부대를 파견한 파병국이다. 아그라 내에 위치한 60공정 야전병원에는 6·25 기념 전시실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이 부대를 방문했다.
이 전 대사는 “양국 간 긴 교류의 역사 중 서로 앙금이 있는 적이 없고 굉장히 친근한 인식이 있다”며 “걸림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인도에 대한 막연한 편견 뿐”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사가 퇴임 후 인도포럼을 비롯해 한-인도 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다.
그는 “현재 양국 교역액이 1조달러가 넘는 무역 대국인데, 양자 간 교역액은 300억달러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며 “양국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하면 조금 더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준규 전 주인도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모디 총리의 향후 5년, 국제 정치에 영향”=대사 재직 시절 느꼈던 인도에 대해 이 전 대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거대한 나라가 막 시동을 걸고 밝은 미래를 향해 발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2014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BJP)이 압승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하면서 “늘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잠자고 있던 나라’가 모디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잠에서 깨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모디 총리는 올해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해 10년에 이어 추가 5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다만 집권당인 BJP가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해 예상과 달리 압도적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이 전 대사는 “인도 국민들이 ‘모디 총리가 5년 더 이끌어 주기를 원하지만, 너무 독선적이지 않고, 소수의 의견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해 주기 바란다’는 것으로 읽었다”고 밝혔다.
집권 11년 차에 접어드는 모디 총리의 향후 5년이 인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 전 대사는 “모디 총리의 역할이 인도의 장래에도 영향을 미치고, 주변 국가 내지 세계 다른 국가들, 국제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동맹, 비가담’ 전통의 인도의 외교가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했고, 모디 총리는 직접 쿼드(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 4자 안보대화) 정상회의에 참여했다. 모디 총리는 3선 임기를 시작한 직후인 지난 7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고, 8월에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이에 대해 이 전 대사는 “외교 원칙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기보다 인도 외교관들이 즐겨 얘기하는 ‘인도는 누구의 편도 아닌 인도 편’이라는 실용주의 외교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대사는 “국력 신장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인도로서는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극적 외교가 아니라, 인류의 공통선도 고려하는 적극적 외교로의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맏형격인 모디 총리가 국제 문제에서 실익만큼 명분에도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준규 전 주인도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우리 관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도를 이해해야”=이 전 대사는 우리나라가 가지는 지정학적 제약을 극복하고 진정한 글로벌 중추국가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인도와의 협력이 큰 외교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동맹 독자외교로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가진 인도의 외교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사는 “인도는 오래전부터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매우 중요시해 왔고, 최근에는 특히 인도 경제 발전을 위한 파트너로서 한국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양국 간 협력 강화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외교, 안보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제조업 육성, 인프라 구축 등 강한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고, 많은 우리 기업이 인도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전 대사는 “저는 우리 기업에 만약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인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며 “인도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도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 다른 정치와 법체계, 문화적 차이가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애로사항이 있는 기업에 팁을 달라는 요청에 이 전 대사는 “인도의 비즈니스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어렵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인도만의 독특한 면이 많이 있으므로 진출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인도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믿을만한 인도 기업과의 합작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디 총리의 한국 사랑은 유명하다. 인도 발전의 모델로 한국을 꼽아왔다. 이 전 대사는 “양국이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질적 내용이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며 “현재 인도는 국력의 급속한 신장과 함께 외교적 관심도 다양해지고 있어, 인도의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이 식기 전에 우리가 보다 적극적 자세로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 전 대사는 인도를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전 대사는 “14억이 넘는 세계 제1의 인구, 대한민국의 30배가 넘는 국토, 다양한 인종들이 다양한 언어를 쓰고 있는 인도를 우리의 관점에서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