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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구글 크롬의 아버지…인도 ‘흙수저’의 신화 [더 비저너리 순다르 피차이]
어린시절 천재적인 기억력...기술에 높은 관심
인도 명문 공과대 거쳐 스탠퍼드대 장학생으로 유학길
2004년 구글 입사, 구글 툴바·크롬 개발 주역
구글 CEO에서 알파벳 CEO까지 올라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인데...아는 게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비저너리]를 챙겨 봐주세요.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신념이 있는지...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의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및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유튜브 영상 갈무리]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안드로이드든 크롬이든 개발에 비관적이었다. 유튜브를 인수했을 때도 너무 비싸게 인수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튜브에서 수익이 나고 있고 크롬은 웹브라우저의 60%를, 안드로이드는 모바일운영체계(OS)의 71%를 점하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걱정’이란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창업이든 도전이든 너무 심각해지지 말라.”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

구글이 크롬을 내놓은 2008년 당시 인터넷 익스플로러(IE) 세상이었다. ‘과연 될까’라는 의문 속에 크롬은 출시 10년 만에 IE 제국을 무너트리고 크롬 제국을 세웠다. 이를 진두지휘한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52)가 2015년 구글 CEO로 발탁됐을 때도 세상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굳이 인도계를 CEO로?”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4년 후 알파벳 CEO 자리까지 꿰차게 된다. 실험적 태도와 혁신을 거듭하는 리더십이 10년 가까이 구글을 진두지휘한 그의 힘이다.

천재적인 암기력…아버지 연봉보다 비싼 미국행 티켓
순다르 피차이(오른쪽)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 인도 타밀나두주에 지내던 당시의 유년 시절 모습. [인터넷 캡처]

피차이는 1972년 인도 타밀 나두주 마두라이에서 태어나 첸나이 지방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전기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속기사였다. 피차이의 집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가뭄으로 한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경험 때문에 지금도 침대 옆에 물을 두고 자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피차이는 어린시절 다이얼 전화기, 냉장고 등 일상에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 소박한 기술에 깊이 매료됐다. 특히 전화기 덕분에 그의 뛰어난 암기력이 주목 받았다. 그는 주변인들의 연락처와 최근 연락한 곳의 전화번호를 모조리 암기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천재적인 암기력을 보고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대학까지 지원할 결심을 한다.

아버지 레구나타 피차이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집에 돌아와서 일과 관련한 어려움에 대해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어린 나이에도 (순다르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운데)의 인도 공과대학교 카라그푸르(IIT Kharagpur) 재학 시절 모습. [인터넷 캡처]

피차이는 인도 공과 대학(IIT) 카라그푸르(Kharagpur) 캠퍼스에 입학하게 된다. 전공은 컴퓨터와 무관한 야금공학이었다. 인도에서 손 꼽히는 공업도시인 카라그푸르에서 가장 각광 받는 전공이었다.

피차이는 2016년 개최된 ‘글로벌 앙터프러너십 서밋(GES) 2016’에서 IIT 카라그푸르에서의 생활에 대해 “매일 붐비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서 대학까지 24시간이나 걸렸다”면서 “하지만 대학 생활은 내 인생을 바꿨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993년 과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피차이는 스탠퍼드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버지는 자신의 연봉보다 비싼 1000달러(약 133만원)짜리 비행기 티켓을 흔쾌히 끊어줬다. 훗날 피차이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했다”며 “부모님이 벌어 들인 수입의 대부분은 나와 동생의 교육비로 들어갔다”며 고마움을 토로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99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재학 당시 기숙사에서 찍은 모습. [인터넷 캡처]

피차이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처음 접한 컴퓨터에 매료되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훗날 피차이는 2022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줄지어 있는 컴퓨터를 보는 것이 제 인생을 바꾼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후 그는 반도체 제작 장비를 만드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에 입사했다.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던 그는 펜실바니아 대학 왓슨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이수하며 기업관리자로서 초석을 쌓는다. 2002년 왓슨스쿨을 졸업하고 맥킨지컨설팅그룹에서 반도체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다가 2004년 구글에 합류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및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운데)가 지난 1997년 미국을 처음 방문한 부모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인터넷 캡처]
무료 이메일이 1GB라고요?…지메일 때문에 구글에 합류
구글 지메일과 이외 애플리케이션(앱)들. [인터넷 캡처]

피차이가 구글 면접을 본 날은 만우절인 4월 1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구글은 지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메일은 1GB를 제공했는데, 당시 다른 무료 이메일 서비스 용량은 10~20MB 수준이었고, 유료 이메일 서비스라도 200MB를 넘지 못했다.

피차이는 처음 지메일의 용량을 듣고는 만우절을 기념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구글은 실제로 대용량의 지메일 서비스를 개시했다. 피차이는 파괴적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에 매료돼 구글에 합류를 결심한다.

피차이가 구글에서 처음 배치된 부서는 당시 웹 브라우저 업계를 독점하던 인터넷 익스플로러(IE)용 ‘구글 검색 툴바’를 만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 IE의 기본 검색 엔진을 자사의 검색 서비스 ‘빙(Bing)’으로 지정하면서 구글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구글 검색 엔진 대신 MS 검색 엔진을 쓰면 구글 검색 방문자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피차이는 이때 검색 툴바 매니저로서 PC 제조사에 방문해 구글 검색 툴바의 유용성을 알리고, 이를 제조사의 PC에 기본 탑재하도록 설득하고 다녔다. 이러한 피차이의 노력 덕분에 구글 검색의 점유율이 빙에게 크게 잠식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세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IE 불만 사용자가 우리 고객...피차이의 승부수로 탄생한 크롬
지난 2012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네 센터에서 열린 구글 I/O 컨퍼런스에서 순다르 피차이 당시 구글 크롬 수석 부사장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피차이는 이 일을 계기로 구글이 인터넷 검색 시장과 광고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웹 브라우저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구글 자체 웹 브라우저의 개발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 등 구글 경영진과 단독으로 만났다.

구글의 자체 웹 브라우저 개발은 크나큰 모험이었다. 당시 웹 브라우저 업계는 IE가 윈도우 운영체제 기본 탑재라는 이점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다른 웹 브라우저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 창업자는 피차이의 말을 듣고선 즉시 웹 브라우저 개발팀을 꾸리게 한다. 그리고 피차이를 책임자로 앉혔다.

피차이는 IE를 분석한 결과 IE에 불만을 가진 사용자가 곧 구글의 새 고객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새 웹 브라우저의 모든 것을 IE의 반대로 진행한 이유다. IE는 웹 표준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새 웹 브라우저는 철저하게 웹 표준을 지키기로 했다. IE는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가 느리고 기능 추가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새 웹 브라우저는 빠른 업데이트와 기능 추가가 가능하게 하고 쓸 데 없는 메뉴를 모두 제거했다. 개발자를 위해 개발 메뉴도 추가했다.

2008년 9월 드디어 구글의 웹 브라우저 크롬(Chrome)이 탄생했다. 빠른 속도, 웹 표준 준수, 간결한 사용자 환경, 지속적인 업데이트 등을 장점으로 크롬은 빠르게 시장을 확장해갔다.

출시 4년 뒤인 2012년 4월 크롬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웹 브라우저로 올라섰다. 올해 기준 전세계 크롬 사용자는 34억5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크롬을 실행하면 첫 화면에 구글 검색이 뜨고, 주소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구글 검색에 연결되며, 크롬에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지메일, 지드라이브, 캘린더 등 구글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크롬의 사용자가 늘어나면 검색, 이메일 등 구글의 인터넷 서비스 사용자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구글의 인터넷 광고 수익으로 연결된다.

그 결과 피차이는 2013년 3월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까지 관리하는 통합 최고 관리자가 됐다.

안드로이드의 성공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 본 피차이는 안드로이드 OS라는 구글만의 독보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안드로이드OS의 일환인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오늘날 전 세계 190개가 넘는 시장에서 약 25억명의 월간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덕분에 구글은 웹에 이어 모바일까지 장악한 IT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구글 안드로이드. [로이터]
‘유색인종 최초’ 구글 리더...모기업 알파벳 CEO까지
순다르 피차이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인스타그램 캡처]

이 같은 공로로 피차이는 2014년 10월 구글 제품관리 수석부사장에 임명돼 구글 검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안드로이드 등을 총괄하게 됐다. 피차이가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의 후계자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2015년 8월 피차이는 구글의 CEO로 취임한다. 구글에 입사한지 11년 만이며 유색인종 가운데 최초다. 창업 동지도 아니고 나이도 어린 인도 출신 기술자인 피차이의 CEO 등판은 당시 세간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피차이는 2019년 12월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의 CEO로 한 단계 더 상승한다.

지난해 3월 블룸버그는 피차이가 3년에 한 번 씩 받는 주식 보상금을 포함해 2022년에 총 2억2600만달러(약 3017억7000만원)를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기업 리더 중 한 명이 됐다고 전했다. 피차이가 구글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구글의 주가는 올해 4월까지 400% 올랐으며, 이는 S&P500와 나스닥 지수를 앞지르는 수준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지난 2022년 순다르 피차이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스탠퍼드대의 공개 인터뷰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웃으며 답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피차이는 한국 시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픈AI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로 검색시장에 판도를 바꾸자 구글은 지난해 5월 AI 챗봇 ‘바드(Bard)’를 공개하며 영어에 이어 처음 출시하는 언어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했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두 국가의 중요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피차이는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써니베일에 있는 구글 클라우드 사무실(구글MP1)에서 가진 글로벌 언론간담회에서 “한국과 같은 기술 최첨단 시장에 먼저 진출하는 것은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휴대폰은 한국과 일본에서 서방 국가보다 훨씬 빠르게 보급됐다”면서 “1999년 서울에서 택시를 탔을 때 운전자가 휴대전화 3대를 이용하고 있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며 한국에서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피차이, ‘AI 책임론’에 사임 목소리…반독점법도 패소
순다르 피차이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8년 미국 워싱턴 DC 레이번 하우스 오피스 빌딩에서 열린 하원 법사위원회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AFP]

그동안 구글의 혁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피차이는 올해 들어 ‘AI 책임론’에 직면했다.

지난 3월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2월 텍스트·이미지·음성 등을 생성하는 멀티모달 AI 모델 제미나이를 발표했으나, 결과물에 중대 오류가 발생하자 20일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구글 AI 오류 여파로 피차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CEO의 사임 가능성까지 구글 안팎에서 제기됐다. 테크업계 유명 투자자인 사미르 아로라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피차이는) 곧 해고되거나 사임할 것”이라고 그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 법원에서 ‘독점 기업’이라는 판결을 받아 사업을 강제 분할해야 할 위기도 처해 있다. 지난 8월 미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며, 구글은 독점기업이 맞다고 판결했다. 이에 법원은 처벌 결정을 내년 8월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미국 법무부는 구글에 대해 강제 기업 분할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미 법무부가 워싱턴 DC의 연방법원에 제출한 32장 분량의 문서에 따르면 반독점 당국은 구글이 검색 엔진 시장에서 경쟁사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크롬 브라우저와 플레이앱스토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등의 사업을 강제로 분할시키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대학서 만난 아내, 평생 동반자로…열한 살 된 아들에겐 휴대폰 대신 이더리움
순다르 피차이(오른쪽)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과 배우자인 안잘리 피차이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FP]

경영자로서 차분한 리더십을 선보이는 피차이는 집에서도 따뜻하고 헌신적인 가장으로 알려진다. 그의 성공 비결에는 ‘건강한 가정’이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피차이는 대학 동창과 오랜 인연 끝에 결혼에 성공한 순정남 스토리를 갖고 있다. 피차이의 배우자 안잘리는 IIT 카라그푸르에서 알게 된 사이다. 이후 둘은 오랜 시간 동안 학문적 견해를 나누며 우정을 쌓았으며 피차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안잘리와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었다.

피차이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반년 간 연락을 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신뢰가 굳건해졌다고 한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겸 알파벳 최고경영자가 인도 공과대학교 카라그푸르(IIT Kharagpur)에서 크리켓을 하는 모습. [유튜브 영상 갈무리]

피차이는 학업에 열정적인 면모 외에도 열렬한 크리켓 팬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그는 유년시절 독서를 제외한 대부분을 시간을 동네 친구들과 크리켓을 하며 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엔 교내 크리켓팀의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실력자였다.

피차이는 체스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그는 독학으로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피차이는 안잘리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힐스에서 거주하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피차이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등 워라밸을 중시한다고 했다.

그는 2022년 인도 뉴델리에서 진행된 ‘우먼윌(WomenWill)’ 행사의 인터뷰에서 ‘워라밸을 어떻게 유지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아내와 많은 일을 번갈아 하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있다”면서 “숙제 등 아이들의 학업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그 만의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한다는 점이 알려지기도 했다.

피차이는 지난 2018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당시 열한 살이었던 아들이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대신 아들에게 이더리움에 관심을 갖게 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상거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DB]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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