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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때 묻은 그의 ‘난중일기’엔…
한국관광공사 사장 이례적 연임…귀화후 CEO · 방송인 종횡무진 활약…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이참, 그의 인생은
취임 후 외국인 관광객 매년 두자릿수 증가…올해 안에 1000만명 돌파한다며 들떠있지만 관광 코리아는 이제 시작일 뿐…

아무리 바빠도 가족여행은 꼬박꼬박 챙겨…섬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지내기도 하고 템플스테이·당일치기 자전거 여행도 빼먹지 않는 코스

한국이 관광대국 가려면 스위스같은 고급문화 이미지 만들어야…1000년을 이어온 철학의 나라, 이런걸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야 진정한 ‘프리미엄’

임기 1년 더 얻었지만 뭔가 새로운 걸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관광이 곧 희망이란 메시지 쉼없이 전파해 나갈 것


귀화 외국인 첫 공기업 사장에 임명된 이참(58)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지난달 29일 3년 임기를 마친 후 1년간 연임됐다. 관광공사로서는 20년 만의 일이다. 2009년 파란눈의 공기업 수장을 맞이할 때처럼, 이번에도 큰 반대여론은 없었다. 

한때 드라마 출연 등 방송인으로서도 활약했던 이참 사장은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모습으로 지난 3년을 보냈다. ‘관광’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3년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영감에 의한 리더십’으로 비교적 ‘선방’했다. 직원들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아이디어 구상은 사내 빠른 업무속도로 나타났고, 외적으론 외국인 관광객 수가 매년 11~13%의 ‘두자릿수’ 비율로 증가했다.

지난달 월 방한객은 102만명으로 사상 첫 10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저기서 “올해 안에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가 열린다”며 열광했지만 이 사장은 오히려 침착하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관광이 이제 본격적인 ‘부흥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이 사장을 지난 9일 한국관광공사 16층 사장실에서 만났다. 그가 보는 ‘우리나라 한국’과 그가 꿈꾸는 ‘관광 대국 한국’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책들이 빼곡한 공사 16층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책장에 놓인 ‘난중일기’가 눈에 띈다. 이 사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임기 연장을 축하드린다. 얼마 전 방송에서 또 다른 귀화 외국인 로버트 할리 씨가 나와 “이참이 나보다 성공했어”라며 부러워해 화제였다. 방송을 보셨는지.

▶(웃음) 방송은 못 봤는데, 주변에서 얘기해주더라. 안 그래도 이상하다 싶었다. 평소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50명 안팎인데, 방송이 나간 날 3000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검색어 1위에도 이름이 올랐다. 할리 씨는 코미디 방송에서도 재미있게 잘하고 인기도 높다. 나는 공사 일을 하기 전에도 코미디는 잘 못해서 안 나갔다. 그만하면 할리 씨가 더 성공한 것 아닌가, 하하.

-임기 후엔 다시 방송에 복귀할 수도 있나. 로버트 할리와 더불어 인기 외국인 방송인이었다.

▶뭐, 이미 해볼 역할은 다 해본 것 같은데, 하하. 할리 씨처럼 코미디는 자신없지만, 드라마 연기는 재미있다. 프랑스 신부, 선교사 등을 주로 많이 했다. 몇년 전 단역이긴 하지만 한 의학드라마에서 영국 총리까지 해봤다니까.(웃음)

그러고 보니 아쉬운 게, 공사 사장되기 직전에 MBC 선덕여왕 감독이 제의했던 역할이 있었다. 외국사신? 그런 건 재미없지, 하하. 선덕여왕의 여러 남편 중 하나였다. 선덕여왕 정도라면 있을 법도 한 이야기지 않은가. 실제로, 신라시대 기마상에는 병정들의 코가 높은 게, 마치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못 한다고 하니, 아예 역할을 없애더라. 재밌었을 텐데….

-관광공사 사장 연임에 대해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 등을 두고 일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기적인 실적평가엔 연연하지 않는다. 처음 공사에 올 때 ‘창의력, 공정성, 소통’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관광공사 업무는 결과물이 빨리 나올 수 없는 구조이다. 정부의 인센티브 제도라든가 차등평가 시스템으로는 우리 직원들을 아주 공정하게 평가내릴 수 없다. 나는 인센티브보다 공정성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노사관계, 조직관리 등에서 점수를 낮게 받은 것 같다.

나름대로 지난 3년간 신종플루, 천안함 폭침사건, 일본 대지진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매년 두자릿수 증가율의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 수가 그걸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3년간 공사 운영에 있어서 ‘이참 사장이기에 가능했던 점’을 꼽으라면.

▶음, 그런 건 직원한테 물어보면 안 되나. (웃음) 주변에서 ‘귀화 외국인’이라서 겪을 어려움이나 유리한 점 등을 궁금해하는데 그런 건 없다. 그저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체어맨 대신 SUV를 타고 있다는 것과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직원들과 격의없이 지내다보니 업무속도가 빨라졌고, 크고 작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공사 1층의 떡카페, 로비에 흘러나오는 음악, 옥상의 작은 농장 등.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모든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들이다.

또 나는 비교적 현장에 자주 나가는 공사 사장이다. 국내 관광 활성화의 일환인 ‘1박 2일’ 여행 가기는 늘 생활화되어 있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직접 가이드한다. 그들 중 자칭 ‘한국 홍보 대사’가 너무 많다. 내가 다 세뇌시켰거든, 하하. 

-관광공사는 직원들에게 장기 휴가를 적극 권장하는 걸로 안다. 한국 조직 사회에서 무리인 듯 보이기도 한다. 결과는 어땠나. 

▶결과는…. 일단. 들어올 때 비서를 못 보았을 것이다, 하하. 수행비서도 지금 2주 휴가 중이다. 취임 때부터 ‘휴가는 생산적인 활동이다’라며 사내 분위기를 바꾸는 데 힘썼다. 올해는 아예 연초에 2주 휴가계획서를 제출하게 했다.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휴가의 분산이 이뤄져서 업무적으로도 모두 수월해졌다. 예전에는 직원 80%가 8월에 여름휴가를 갔지만, 올해는 7~8월에 50%가 가고, 봄과 가을로 나머지 50%가 이동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관광공사 취임 후 정작 본인의 휴가나 여행은 어떠했나.

▶바빠도 가족여행은 꼬박꼬박 가려고 애썼다. 대부분이 국토 순례였다. 한 번은 외딴 섬에 들어가서 며칠씩 로빈슨 크루소처럼 지냈고, 조용하게 템플스테이를 하기도 했다. 아, 최근엔 자전거에 다시 취미가 생겨서, 자전거 여행을 한번 해볼까 한다. 일정이 없는 주말엔 아내와 함께 당일치기 자전거 여행을 간다. 한강을 따라서 인천으로 가기도 하고, 때론 팔당으로 가기도 한다. 아내는 아직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계속 연습하면, 며칠씩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국내 관광진흥의 일환으로 자전거 여행 행사에 참여하였다. 독일에서 보낸 젊은 시절엔 어땠나.

▶대학생 때 독일에서 스페인까지 자전거로 여행했다. 그게 75년인가 76년이었나, 하하. 한국에선 지금 열풍이 불지만, 유럽의 자전거 여행이나 캠핑은 그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다. 내 기억엔 엄청 후진 자전거였는데, 산에 올라가는 게 곤욕이었다. 그래도 무거운 배낭 하나 짊어지고 뭐가 그렇게 신났었는지 모르겠다. 자동차보다 속도가 느린 만큼 보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았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다. 특히, 유명 맛집에서 사장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 미식문화는 관광의 좋은 자원이다. 외국 여행 후엔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직원들에게도 미식관광, 미식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독려하는 편이고, 시간만 있으면 팀별로 맛집에 함께 가려고 한다. 주로, 공사 근처 종로, 삼청동, 동대문, 이태원 등으로 다닌다.

어느 레스토랑의 맛과 분위기 체험은 아주 매력적인 관광 요소다. 최근 한국은 미식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추세다. 카페만 해도 이미 외국 체인점은 맛도 없고,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체인점은 아니지만, 예쁘고 맛있고 고급스러운 커피집들이 생기고 있다. 나는 그게 한국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진선미를 추구하고, 풍류를 즐긴다. 미국 CNN의 여행섹션인 CNN go에서도 최근 한국의 맛집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요즘엔 생동감과 따뜻한 정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시장을 즐겨 찾는다. 특히 ‘순희네 빈대떡’은 즉석에서 녹두를 갈아 숙주와 함께 반죽하는데, 두툼하면서도 바삭바삭하게 구워낸 손맛이 일품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54년 독일 바트크로이츠나흐 출생.
구텐베르크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트리니티대학원에서 성서상담학을 전공했다. 1992년부터 94년까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해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빅웰 회장직을 거쳐 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해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또 KTF 사외이사, 기아자동차 고문, 기획예산처 혁신 자문위원, 예일 회계법인 고문,한식세계화추진단 위원, 국가브랜드 위원회 문화관광분과위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 7월부터 한국관광공사 사장직을 수행 중이다. 지난달 29일 3년 임기가 종료됐으나 1년간 연임됐다. 부인 이미주(55) 씨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자녀들은 모두 독일에서 유학 중이다.

-7월 한 달간 방문객이 사상 첫 100만명을 넘었다. 11월이면 1000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류가 관광객 급증에 기여했다는 의견이 많은데.

▶물론 일조한 건 사실이다. 전체 관광객 중 10%를 차지하는 걸로 추산된다. 하지만 큰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다. 생각해보자. 록밴드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 한국 젊은이들이 오로지 그 때문에 영국 여행을 계획할까. 아니다. 영국은 ‘영국이니까’ 가고 싶은 거다. 라디오헤드는 영국의 아주 일부분이다. 그처럼 K-팝(Pop)이나 드라마 때문에 한국에 오는 사람들은 마니아층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지속성도 떨어진다.

-한류 관광은 한국 관광이 나아갈 길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해외 관광객 유치에 국내 관광 산업이 가장 집중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

▶물론 한류가 국가 인지도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에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고급문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급선무다. 부가가치는 ‘전통’에서 나온다. 루이비통, 샤넬을 왜 사는가. 가방의 기능이 가격만큼 뛰어나던가. 아니다, 유럽의 문화적 이미지 때문이다. 국가 이미지는 모든 산업에 걸쳐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한국도 스위스 같은 관광국이 돼야 한다. 스위스는 전체 인구의 배나 되는 여행객을 받고 있지만, 저가 여행지가 아니다.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여행지이다.대중문화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고급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큰 영향을 주진 않는 게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대중문화가 가장 앞선 나라이지만, 유럽처럼 단번에 떠오르는 ‘프리미엄 브랜드’는 없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유럽과 같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다. 한국의 프리미엄은 오랜 역사와 전통, 철학에서 나온다. 한국은 1000년 이상 철학의 나라였다. 불교, 유교, 도교 등 왕들은 철학을 공부한 학자였고, 붓글씨를 쓰는 예술가였다. 백성들을 무력이 아닌 윤리관과 도덕관으로 다스렸다.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도자기, 조각, 건축, 미술 등에 이러한 전통을 이야기로 엮으면 이건 커다란 관광 자원이 된다.

한국 관광 ‘큰 손’인 중국인들에게 물어보면, 한류 때문에 한국에 오는 게 아니더라. 그들은 한국이 ‘깨끗하고, 쇼핑하기 좋고, 음식이 맛있어서’ 온다. 아쉬운 건 중국인들 쇼핑 품목이 유럽의 명품 브랜드라는 것. 물론, 국내 화장품들도 쇼핑 리스트 상위에 있긴 하다.

-런던올림픽 기간 중 영국 사치갤러리에서의 홍보활동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 대중문화 한류가 아닌, ‘하이엔드’ 한류를 위한 홍보였다. 주요 관광객 층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런던 사치갤러리의 찰스 사치가 직접 작가를 고르고 작품을 선별했다. 34명의 한국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이 소개됐다. 오프닝 때 1500여명이 왔고, 올림픽 기간 중 매일 5000여명이 방문했다.

한국 현대미술엔 앞서 이야기한 한국의 전통과 기운이 담겨져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또 난타와 국악을 접목한 퓨전 공연이 15분가량 있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1년을 더 얻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또 대선 이후엔 어찌 될지 모른다. 남은 임기를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특별히 달라지는 방향은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의 연장선이다. 무엇보다 올해 초 시작한 일들을 본궤도에 올릴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 집중하고 싶은 건 창조관광산업이다. 관광과 창업을 엮은 사업인데, 몇 해 전부터 벼르다가 올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복합 마이스(MICE) 단지 건립 등 인프라 확장에 힘쓸 예정이다.

올해 외국관광객 1000만명 넘긴다고 했나. 시시하다. 1000만명은 시작에 불과하다. 제주도 봐라. 50만명 인구에 내외국인 1000만명까지 찾아간다. 제주도가 한다면, 대한민국도 할 수 있다.

또 ‘관광산업=희망산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홍보에도 힘쓸 예정이다. 관광하기 좋은 나라가 바로 살기 좋은 나라 아닌가. 그게 1년이든, 8개월이 되었든 말이다. (웃음)

-사장직을 물러난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아직 계획한 바는 없다. 다만, 관광 발전을 위해서 계속 일하고 싶다. 그게 반드시 관광공사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연임과 런던올림픽 일정 등 쉴 새 없이 바빴다. 올여름 휴가 계획은.

▶9월에 갈 예정이다. 한곳에 머물면서 푹 쉬고 싶다. 아마도 템플스테이를 하든지 산으로 가게 될 것 같다. 남도의 아름다운 사찰 순천 송광사도 좋고, 작년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산청도 또 가고 싶은 여행지이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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