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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상상속 별종 늑대인간…남다른 그들을 우린 사랑할 수 있을까
늑대인간
악마 혹은 수호신役 늑대
‘울프맨’ ‘트와일라잇’ 등
서구 영화·전설속 단골손님

‘늑대소년’ ‘늑대아이’에선
인간·자연과의 관계 재해석


오는 31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늑대소년’은 흥미로운 징후를 보여준다. 한국 영화가 담는 이야기의 서구화 혹은 서구적인 스토리의 한국적인 차용 및 변용이다. 사실 늑대와 인간이 결합한 상상 속 별종으로서의 늑대인간은 우리 전통의 이야기에는 낯선 존재다. 한국 영화에도 등장한 적이 없다. 한국에선 늑대보다는 여우가 민담이나 전설의 친숙한 소재였다. 한국 영화에서도 잊을 만하면 사람으로 둔갑해 출현했다. 여인이 한을 품고 여우가 되거나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이 되려고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67년작 ‘처녀귀신’부터 신상옥 감독의 ‘천년호’ ‘사호무협’ ‘마계의 딸’ ‘여랑’ ‘춘색호곡’ ‘구미호’ 등을 거쳐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까지 여우(인간)가 등장하는 영화가 2000년대까지 꾸준히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우는 하나같이 여성이었다. 

‘늑대소년’은 한 노년 여성이 10대에 만났던 늑대소년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다. 소녀와 늑대소년은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지만, 늑대소년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시련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나와 다른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여우와 달리 ‘늑대인간’은 유럽의 전설이나 민담 속에서 기원한 존재다. 영어로는 ‘웨어울프(werewolf)’ ‘울프맨(wolf man)’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라고 불리는 늑대인간은 헤로도투스의 ‘역사’나 오비디우스의 ‘메타모포세스(변신담)’ 등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에서 이미 나타난다. 물론 대부분의 성별이 남자다. 이후 대대로 유럽 전역의 신화ㆍ민담ㆍ전설 등에 등장하며 문학에도 자주 다뤄졌다. 영화로는 1935년작인 ‘런던의 늑대인간’이나 1941년작 ‘울프맨’을 비롯해 지금까지 수백편의 늑대인간 영화가 만들어졌다. 대형 흥행작인 ‘해리포터’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신드롬을 일으켰던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이 늑대인간 종족이다. 서구의 영화나 전설 속 늑대인간은 보통 보름달에 늑대로 변신하며, 몸집이 일반 늑대보다 크고 초능력에 가까운 괴력을 지녔다. 사람을 해치거나 잡아먹고, 인간으로 돌아오면 늑대로서 저지른 짓을 까맣게 잊는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로의 변종도 보이며, 죽지 않고 부활하는 영생의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왜 늑대인간 설화가 끊임없이 나타났을까? 근대 이전의 연쇄 살인사건을 상징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서사라는 분석도 있고, 인가에 출현해 가축을 물어가곤 했던 늑대에 대한 공포가 반영됐다는 견해도 있다. 광견병이나 낭증(늑대라는 망상에 빠져 늑대 흉내를 내는 정신병) 등의 질병 때문이라는 풀이도 있다. 늑대는 흡혈귀나 좀비 등과 더불어 보통 악마적인 존재로 그려지지만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제이콥(테일러 로트너 분)처럼 인간을 수호하는 역할로 나타나기도 한다. 


‘늑대소년’은 한 노년의 여성이 수십년 전인 10대에 만났던 한 늑대소년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다. 폐병에 걸려 요양차 홀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시골의 한 아름다운 저택으로 이사 간 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소녀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정체 모를 짐승을 발견하는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고 말도 못하는 늑대소년이었다. 마음 따뜻한 어머니가 늑대소년을 잠시나마 거두게 되고, 병으로 인해 자괴감과 세상에 대한 원망만 있던 소녀는 야성만 있는 늑대소년을 길들이며 차츰 교감을 하게 된다. 소녀와 늑대소년은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지만, 늑대소년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시련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렛미인’에서 소녀 뱀파이어와 소년의 사랑, ‘트와일라잇’에서 소녀와 흡혈귀, 늑대인간의 러브스토리를 봐왔던 젊은 여성 관객들이 특히 선호할 만한 로맨스영화다. 여기서 소년이 늑대인간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늑대인간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은 서구의 영화에서 익숙한 설정을 보여준다.

최근 늑대인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가 있었다. 늑대인간을 사랑했던 한 여인이 남자의 아이를 낳고 인간세상 속에서 키워가는 이야기를 빼어난 정서와 스토리로 그린 수작이었다. 아들 딸을 늑대로 키워야 하나, 사람으로 키워야 하나 갈등에 빠진 엄마를 통해 품 안의 자식을 언젠가는 세상으로 내보내는 부모의 드라마를 빼어나게 담아냈다. 

결국, 이 두 작품에서 늑대인간은 ‘나와 다른 타자’를 상징한다. 결국 ‘나와 다른 타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 설화 속 ‘여우’가 전통적인 삶 속에 내재된 욕망과 원한을 상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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