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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함영훈> 어린 양들의 침묵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로 유명한 조나단 드미 감독의 1962년 개봉작 ‘맨추리언 캔디데이트’는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매복에 걸려 포로가 된 미군들이 세뇌(洗腦)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베넷마코 대위 일행은 만주(Manchuria)의 어느 수용소로 끌려갔고, 소련군의 심리전 전문가들과 생활하면서 최면술, 사상주입 등 수법에 걸려 소련 사회주의가 지상 낙원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종전후 풀려나 귀국한 마코는 미국 대선과정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며 독설을 퍼부은 대통령 후보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다가 끝내 소총으로 그 후보를 저격하고 만다. 세뇌의 위험성을 경고한 영화이다.

세뇌는 종교적 교리 또는 신조, 새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그릇된 것을 믿게 하거나 기존 관념으로부터 전향시키는 것이다. 신체적·사회적 여건들을 통제함으로써 지배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심을 키워내기 위함이다. 시간, 공간이 바뀌면서 세뇌된 내용과 정반대의 사실들이 확인됐음에도 이미 주입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뇌의 결과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한동안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거여동 다단계 집단합숙촌의 청년들, 동북공정, 식민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부 동아시아 역사가들, 상대를 악이라 주장하는 기독교-회교 원리주의자들, 업적을 과장하고 남이 한 일을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꾸미는 권모술수 정치인 등도 세뇌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라 할 만 하다.


실재와는 다른 이미지 즉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위험성을 설파한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 등은 대중매체의 아젠다 설정, 편집기술, 상징조작 역시 세뇌의 한 유형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복잡해서 한 가지 틀로 이해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등 몇몇 상징조작가들은 비슷하거나 부분적으로 유사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 그것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인 것 처럼 위장해서 대중을 현혹하거나 지배하려 든다”면서 ‘맥락화의 함정’을 꼬집기도 했다.

세뇌는 구시대의 전유물일까. 인터넷 SNS가 발달한 요즘시대 세뇌가 없을 것 같지만, 지난 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는 여신도들을 유아,어린이 단계부터 세뇌시켜 성적으로 유린한 어느 종교집단의 추악한 의혹이 방송되면서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치원에 다닐 법한 아이들이 세상과 격리된 마을에서 교주를 향해 “영원토록 원자씨를 낳아 드릴께요. 뽀뽀해 주세요. 꼬마 신부들에게. 뽀뽀해 드릴께요. 나의 낭군님께. 내 사랑 나의 여보 난 보고 있어요. 나의 달링 자기”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전해졌다. 청소년들은 ‘네가 내 씨니 내 씨를 네가 퍼뜨리리라’는 교리를 배웠고 교주가 성관계를 원할 때 그 교리에 따라 임했으며 성관계 직전 무슨 의식인양 큰 절을 했다고 털어왔다.

교주는 ‘인간의 십계 중 제7계명(간음하지 말라)의 죄에서 벗어날 길 없는 창기와 같은 존재로 색욕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기에 구세주가 색욕의 함정으로 들어가 창기를 취하고 죄인이 됨으로써 인류를 구원한다’는 터무니 없는 내용을 주입했는데도, 세뇌의 결과는 성폭행범을 사랑하는 척 해야 하는, 끔찍한 조작을 빚었다.

이쯤되면 세뇌는 단순한 착시,오해를 넘어 최악의 공포이다. 경찰 수사와 당국의 대응은 철저하되 세심해야 한다. 그 아이들이 어떤 분노의 총탄을 우리 사회를 향해 쏠지 모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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