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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먹고 살기 힘들어…” 주부 상습절도에 영아 유기까지…
중산층 붕괴로 본 사회현상
저소득층 늘자 생계형 범죄 급증
사회 불만 품은 ‘묻지마 범죄’까지…
일자리 창출 등 안전망 마련 시급



분유 값을 감당 못해 핏덩이를 버리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어떤 엄마들은 남의 집 담을 넘기도 했다. 폐지라도 줍겠다고 나섰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맨홀 뚜껑을 훔쳐 판 사람도 나타났다. 어렵고 지친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묻지마 범죄’까지 잇따랐다.

지난 2012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 찢어지게 가난한 자’와 ‘× 터지게 넘치는 부를 가진 자’가 공존하는 나라다. 전문가들은 이 간극이 줄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불행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997년 전체가구의 74.1%였던 중산층은 2011년 67.7%로 쪼그라들었다. 중산층으로 구분되는 한 달 가처분소득이 88만~263만원인 가구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현재 우리나라 중산층이 주택ㆍ사교육비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차 무너지고 있다”며 “자영업자도 망해 저소득층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강력범죄비율이 2011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것처럼 우리나라의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살기 팍팍할수록 늘어나는 살인ㆍ강도=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각종 흉악범죄도 증가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발생한 살인ㆍ강도 등 강력범죄는 2만6699건으로 2007년 발생한 2만659건에 비해 20% 이상 늘었다. 살인ㆍ강도는 2008년 2만2926건, 2009년 2만5311건, 2010년 2만5820건, 2011년 2만6699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인다. 절도 역시 늘어났다. 절도는 2011년에는 28만1362건이 발생, 2007년도 21만2346건에 비해 20% 이상 늘었다. 폭력도 2011년 31만1945건으로 2007년 29만4563건에 비해 5% 이상 증가했다.

▶주부 절도, 영아 유기 등 생계형 범죄도 늘어=늘어나는 범죄에는 팍팍한 삶에 먹거리를 찾기 위한 ‘생계형 범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천 서구에서는 4개월 동안 200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훔쳐온 주부 A(39)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생활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남 창원시에 살고 있는 주부 B(47) 씨는 지난해 9월 25일 C(40) 씨가 운영하는 마트에서 20㎏짜리 쌀 등 시가 5만9800원 상당의 생필품을 두 차례에 걸쳐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1700건이었던 주부 절도는 2012년(11월 기준) 2718건으로으로 60%가량 늘었다.

생계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훔치는 세상이 됐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전북 김제에서는 D(50) 씨가 맨홀 뚜껑을 훔치다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인 D 씨는 “관절염을 앓게 돼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폐지 줍기에 나섰지만 이것만으론 생활을 버티기 힘들어 맨홀 뚜껑을 훔치게 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D 씨에게는 장애인인 두 아이와 당뇨를 앓는 부인이 있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려나가던 E(71ㆍ여) 할머니는 떡집 앞의 떡 상자를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할머니는 이 떡을 자신처럼 혼자 살거나 생활이 어려운 동네 노인 20여명과 나눠먹었다.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돼 핏덩이를 내다버리는 부모도 늘었다.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에서는 “키울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어난 지 10여일밖에 안 된 남자아이를 버리고 달아난 F(30ㆍ무직) 씨 부부가 경찰에 검거됐다. F 씨 부부는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난 1월 광주 서구에서는 이혼한 뒤 아이 넷을 키우던 G(39) 씨가 생활고에 우울증까지 겹쳐 자신의 아이들을 내다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영아 유기 사건은 132건으로 2009년 52건에 비해 2.5배 이상 증가했다. 영아 유기 사건은 2010년 69건, 2011년 127건으로 급증세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묻지마 범죄’로…=노력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꾸만 중산층에서 하락하는 세상이 되면서 불만을 세상 밖으로 토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남 울산에서는 지난해 8월 2일 은둔형 외톨이인 H(27) 씨가 동네 슈퍼 여주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구속됐다. H 씨는 무직, 생활고 등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불특정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는 의도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8월 경기 의정부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I(39) 씨가 갑자기 흉기를 휘둘러 시민 8명이 다치기도 했다. I 씨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10여년 동안 일정한 직업 없이 공사판을 떠돌아다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한 살인은 1994년 197명에서 2010년 372명으로 7년 새 2배가량 늘어났다. 비면식관계 피해자 상해 사건도 1995년 1만4504명에서 2010년 5만7238명으로 6년간 4배가량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금전 등의 목적을 위한 ‘도구적 범죄’ 역시 증가하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묻지마 범죄 등 ‘표출적 범죄’가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원 부수석연구원은 “표출적 범죄는 도구적 범죄보다 생명ㆍ신체상 위험을 주는 더 무서운 범죄”라면서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실패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뤄지는 표출적 범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안전망 조속히 마련해야=전문가들은 중산층 붕괴가 ‘범죄율 증가,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사회안전망 확보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 연달아 실패하면 사회 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중산층의 저출산ㆍ자살 급증, 범죄율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이 중산층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 직업훈련과 구인구직정보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지난 정부가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망을 넓히기보다는 산업구조에 대한 지원대책을 쏟아내다 보니 또 다른 범죄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개인파산신청제도와 개인회생제도의 혜택을 늘리는 것도 중산층을 회복시켜 범죄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국ㆍ민상식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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