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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42>흔들리는 세계 경제의 중심, 변화하는 할렘…뉴욕은 몇시인가
[뉴욕=이해준 문화부장]페루 리마에서 출발,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남쪽 끝 포트 로더데일을 경유해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한 것은 해가 막 넘어가던 오후 7시였다. 대도시라 모든 것이 크고, 복잡하고, 화려하고, 바빴다. 지난 1개월여 동안 남미 안데스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느슨함에 흠뻑 빠졌던 때문인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사람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지난 8개월간 아시아~유럽~남미를 돌면서 멋진 석양에 넋을 잃은 경우가 많았는데, 뉴욕에 도착해서는 그걸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뉴욕과의 첫 만남이 이런 낯설음이었다면, 그에 이어 찾아온 것은 외로움이었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 셔틀버스를 타고 맨해튼 센트럴파크 옆의 숙소로 가면서 고독감이 더 밀려왔다. 마치 뉴욕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표류하는 외로운 조각배 같은 느낌이었다. 제3세계의 변방에서 제1세계의 중심으로 오면서 생긴 문화적 쇼크 속에 뉴욕 여행은 시작됐다.

▶흔들리는 세계 경제의 심장=뉴욕을 한마디로 말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여행자 10명에게 물어보면 모두 다를 것이다. 그만큼 다양성이 넘친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여행은 편견을 갖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한 게 여기에 딱 어울릴지도 모른다.

뉴욕은 세계 경제ㆍ금융의 중심으로, 전세계의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진출해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다. 첨단기술과 최신 패션이 공존하며, 공연과 미술 등 각종 문화와 예술, 법률, 서비스, 교육의 중심 도시다. 인구가 820만명이지만 방문자가 연간 5000만명을 넘는다. 뉴욕 인구의 약 36%가 외국 태생으로, 지구의 모든 인종이 몰려 북적대는 최고의 다문화 사회다.

그 다양성을 들자면 끝이없다. 여기에 ‘자유의 여신상’부터 월가, 9ㆍ11테러 현장, 유엔본부, 타임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센트럴파크, 박물관, 미술관 등 볼거리도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볼 것인가. 나는 어떤 ‘편견’을 가질 것인가.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걷기, 하늘에서 내려다보기, 할렘과 외곽 중산층 거주지역 돌아보기... 일단 이 정도가 떠올랐다. 월가를 비롯한 핵심지역은 이전에 취재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 돌아보았기 때문에 이번엔 배낭여행자의 자유를 누려보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뉴욕 중심부의 타임스퀘어에 기업들의 전광판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시민과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도착 다음날 하늘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올랐다. 이전에도 올라가 보았지만 왠지 다시 보고 싶었다. 어마어마한 빌딩 숲이 그대로 있었다. 9ㆍ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엔 골조공사가 끝난 104층 높이의 새로운 원세계무역센터(OWTC) 빌딩이 우뚝 서 있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로마의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페루의 마추픽추가 고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면, 맨해튼의 마천루 숲은 ‘근대적’ 경제성장의 성취이자 유산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마천루의 색깔은 퇴색하는 듯했다. 근대적 경제성장과 미국식 자본주의는 그 부산물로 환경과 공동체의 파괴, 삶의 근원적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2008년 월가의 위기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결함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미국이 세계 경제ㆍ금융의 심장부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심장이 동맥경화에 걸려 주기적인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뉴욕의 황금시대가 있었다면 아마 전후 고도성장기 또는 1990년대 신경제 호황기였을 것이다. 론리플래닛이 ‘뉴욕의 금박시대(금으로 도금된 시대)’는 지나갔을지 모른다고 표현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을까. 엉뚱한 생각에 날씨가 화답하듯, 월가 건너편 허드슨 강에 잔뜩 끼어있던 먹장구름이 맨해튼으로 몰려왔다. 102층 높이의 빌딩이 순식간에 거친 비바람에 휩싸였다. 맨해튼도 먹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에선 금융위기의 그림자를 찾기 어려웠다. 브로드웨이와 타임스퀘어엔 활기가 넘쳤고, 타임스퀘어엔 기업들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수를 놓았다.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거리와 광장, 식당, 카페를 메우고 에너지를 발산했다. 거기에 서니 이곳이 ‘세계의 교차로’라는 말이 실감이 갔다. 모든 길이 통했다는 로마, 흥청망청하던 전성기의 고대 로마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본 맨해튼 빌딩 숲. 빌딩 숲 건너의 먹장구름이 뉴욕과 세계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를 암시하는 듯하다.

▶뉴욕의 슬픔과 희망을 간직한 할렘=숙소에선 다양한 투어를 제시했다. 그중 데이브라는 80세가 넘은 노신사가 진행하는 할렘 도보투어를 신청했다. 그는 할렘에서 태어나고 자란 본토박이 뉴요커로, 할렘의 살아있는 역사다. 영국, 독일, 호주인을 포함해 모두 7명이 지하철을 타고 할렘 입구인 168번가로 향했다. 하지만 으스스한 곳으로 간다는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100년이 넘은 지하철 1호선은 생각보다 잘 관리되어 있었다. 플랫폼에선 한 악단이 남미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낭만적인 분위기까지 풍겼다. 영화에서 보던 휘갈긴 낙서와 노숙자, 부랑인들을 볼 수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할렘가로 들어가는 길목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흑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다 암살된 말콤 엑스의 기념관이었다. 그는 할렘이 최악의 흑인 빈민가로 악명을 날리던 1950~1960년대의 흑인운동 지도자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본 맨해튼. 멀리 고층빌딩들이 들어선 곳이 월가이며, 가장 높은 빌딩이 새로 지어지는 원세계무역센터(OWTC) 빌딩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비폭력주의에 기반한 흑인 권리향상을 주장했던 것과 달리, 말콤엑스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하고 이슬람 국가를 설립해야 한다는 급진적 분리주의 운동을 펼쳤다. 탁월한 웅변과 정연한 논리로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지도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새 방향을 모색하던 중 한 급진주의자에 의해 암살됐다. 그 나이 40세였다.

기념관에는 그의 생애와 활동을 담은 각종 자료를 전시해 놓았고, 2층에선 흑인 권리향상을 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광기의 시대’를 지나 이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정도로 사회가 변했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가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인간소외, 확대되는 빈부격차, 줄어드는 사회복지 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미국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문제다.

이어 할렘의 중심 주거지역인 ‘슈거 힐(Sugar Hill)’, 즉 ‘설탕 언덕’으로 향했다. 할렘은 1800년대말~1900년대초 흑인들이 대거 뉴욕으로 들어오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아메리칸 드림’의 달콤한 희망을 담아 ‘슈거 힐’이란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슈거힐에서도 음습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끼긴 힘들었다. 1994~2001년 재임한 줄리아니 시장이 범죄와의 전쟁을 펼치고, 이후 지금까지 블룸버그 시장이 재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크게 달라진 것이었다. 데이브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지도층과 시민들의 기부로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 등에 투자도 하고 있다”며 “할렘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할렘 내부 구성도 바뀌고 있다. 과거 흑인들이 주를 이뤘지만, 1980년대 이후 히스패닉에 이어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 한국 등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할렘엔 남미 음식점과 중국 및 한국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보였다. 데이브는 “집값이 싸기 때문에 처음 이곳에 들어와 기반을 잡은 다음,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할렘이 위험한 지역이란 생각과 다르다”고 말하니, 데이브는 “진짜 위험한 곳을 원하면 밤에 데리고 갈 수 있다”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영화는 대부분 극단적인 것들을 보여준다”며 “20여년 동안 많이 달라졌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개선되는 속도가 느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1990~2008년 사이 할렘지역의 살인 사건은 80%, 강간은 58%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범죄수가 73% 줄었다.
 
말콤엑스 기념관 내부. 1950 후반~1960년대 중반 급진적 이슬람 국가운동 지도자였던 말콤엑스의 활동자료와 교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뉴욕은 과연 몇시인가=뉴욕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혼란이 남았다. 하루는 뉴저지에 사는 조카를 만나 뉴욕 외곽을 돌아다니고 그의 집에서 묵기도 했다. 넓은 부지에 주택들이 뜨엄띄엄 자리를 잡은, 중산층 주거지역이었다. 외면상 평화로웠지만, 이웃과의 소통은 힘든 곳이었다. 음료수나 스낵을 사려해도 차를 몰고 나가야 했다. 사람 냄새를 맡기도 어려웠다.

이 공룡 도시는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신의 이해에 맞는 ‘굿딜’을 찾아 에너지를 분출하며 광속으로 살아가는 곳에서, 단일한 이미지를 찾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뉴욕이 최고의 시간을 이미 써버렸을 것이란 생각, 할렘의 변화처럼 사람이 노력하면 사회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희망, 하지만 흑인을 포함한 소외계층이 진짜 ‘설탕 언덕’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뉴욕에 대한 어떤 단일한 ‘편견’을 갖기는 어려웠다.

/hjlee@heraldcorp.com

할렘의 중심 주거지역인 슈거 힐의 새롭게 단장된 주택가.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주택가격도 올랐지만, 최근 금융위기 여파로 빈집이 많다.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2011년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할렘가에 있는 히스패닉계 상점. 1980년대 이전에만 해도 흑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이후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들어오면서 할렘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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