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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오지앙후 최막심’ 연출 양정웅-음악 하찌
두 ‘자유로운 영혼’을 만났다. 그저 꽹과리 소리가 좋아 본국 일본을 떠나 한국에 들어 와 7년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하찌(59ㆍ가스가 히로후미)와 마음 가는 대로 연출을 고치는 것으로 유명한 연출가 양정웅(45)이다. 최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라오지앙후 최막심’의 음악감독 하찌와 양 연출은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찌 선생님은 또 다른 ‘최막심’이에요. 너무 팬이에요”라고 치켜세우는 양 연출. “나도 노래 말고 대사 좀 달라”고 농담하는 하찌. 마음이 척척 들어맞는 게 한눈에 봐도 찰떡 호흡이다.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라오지앙후 최막심’은 니코스 카잔자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안한 연극이다. 명동예술극장이 해외 고전을 한국 무대에 맞게 희극화하는 첫 시도 이자 올 상반기 최대 기대작. 정통 연극에 강한 배삼식 작가가 원작의 배경이 되는 크레타를 1941년 러시아령 연해주 얀코프스크 반도 바닷가 근처 조선인 집단 거주지 앵화촌으로 바꾸는 등 한국 상황에 맞게 고치고, ‘한여름 밤의 꿈’ ‘페르퀸트’ 등에서 전통과 서구의 스타일을 절묘하게 버물려 호평받은 양정웅이 연출했다. 여기에 하찌와 최은진의 ‘풍각쟁이 은진’ 음반을 듣고 그 음악에 반한 배 작가가 하찌를 음악 감독에 추천하면서, ‘한국판 조르바’가 재탄생했다.

무대는 감각적 연출을 선보여 온 양 연출의 전작에 비해선 단출하다. 둥그스런 회전 바닥에 흙이 깔렸고, 가운데에는 길고 붉은 철판이 비스듬하게 놓여있다. 흙은 대지, 최막심의 광기와 자유, 본능 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양 연출은 “흙은 대지가 갖고 있는 생명과 힘, 삶의 긍정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흙에는 물을 뿌리지만 일부 장면에선 자연스럽게 먼지가 일어난다. “삶에는 먼지가 좀 나야죠”라는 게 양 연출의 답변. 실제 쌀로 밥을 지어 배우가 주먹밥을 먹고 살아있는 닭도 등장한다. 양 연출은 “원작이 함축하고 있는, 삶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에너지와 긍정성을 살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붉은 철판은 본능대로 사는 최막심이 아코디온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공간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상징한다.
 
사진설명 / ‘라오지앙후 최막심’ 개막 하루 전인 7일 명동예술극장 객석에서 하찌(왼쪽)는 왠지 손이 허전했던 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우크렐레를 찾았다. 양정웅 연출은 하찌의 팬이 돼 다음 작품에서 꼭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양 연출은 하찌 감독을 의식한 듯 음악을 제일 강조했다. 평소 음악과 미술을 좋아해 연출에 이를 자주 활용하는 양 연출은 “방대하고 관념적인 원작을 음악으로 많이 표현하려 했다”며 “흘러간 40년대 가요와 러시아 민요, 하찌 선생의 라이브 음악이 또 다른 매력으로 보여질 것이다. 하찌 선생의 편곡은 인간적이고 감성적이어서 극과 잘 어우러져 있다”고 했다.

여름철 해변을 연상케 하는 밝고 경쾌한 느낌의 곡을 주로 선보인 하찌의 음악이 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들리는 앵화촌이나 선굵은 최막심과 어떻게 어울릴까. 하찌는 “나를 분석하자면, 북방의 피가 흐르고 실은 애절한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러 따뜻한 남쪽 노래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애절한 곡을 쓰고 불렀다”며 그 자리에서 우클렐레로 최막심 테마송을 들려줬다. 나즈막한 러시아 민요 카츄사 풍이다.

극 에선 하찌가 직접 작곡한 ‘최막심 테마송’ 외에 ‘코스모스 탄식’ ‘연해주 천리길’ ‘아리랑 그리운 나라’ ‘이태리의 정원’ ‘울어라 문풍지’ ‘화류춘몽’ 등 1930ㆍ40년대 근대 가요를 들을 수 있다.

하찌는 우크렐레 연주 외에 직접 하모니카도 분다. ‘최막심’을 연기하는 배우 남경읍은 아코디언을, 또 다른 배우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등 배우들이 저마다 악기를 하나씩 들고 노래한다. 하찌는 “하모니카를 이번에 처음 배웠다”면서 “극장 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하모니카를 불었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일본에선 규칙이 많아서 답답해서 못산다”고 손사레를 쳤다.


양 연출은 “우리는 자유를 풍요롭게 누리고 살고 있지만, 정신은 가난하고 지쳐있고, 도덕이나 국가 이념, 종교 등에선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이 작품은 ‘많은 굴레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무엇이고,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질문을 관객에 던진다. 지치고 힘든 시대에 관객이 최막심 처럼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느꼈으면 더 바랄게 없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연출가 양정웅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처음엔 배우가 되고자 했다. 1986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2000년까지 연기자로서 활동했고, 연극 연출은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2년 세익스피어 희극을 한국적으로 바꾼 ‘한여름 밤의 꿈’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2003년 문화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9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을 받았다. 다음달 8일과 9일 공연되는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처용’ 연출도 맡았다. 그의 부친은 소설가 고 양문길 작가, 모친은 극작가이자 극단 운영도 한 김청조 여사다. 김 여사는 올해 ‘예술가의 장한어머니 상’ 수상자로 선정돼, 8일 열린 시상식에서 양 연출이 어머니께 쓰는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작곡가 하찌는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본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에서 ‘냄비, 재떨이 같은’ 꽹과리 소리에 반해 1985년 처음 한국을 왔다. 1988년까지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서울올림픽을 보고 돌아간 뒤 2000년대 중반 다시 한국을 와 강산에, 전인권 등의 음반에 프로듀싱으로 참여 했다. 2009년 하찌와 TJ의 ‘별총총’ 앨범으로 직접 노래하기 시작했고, 2010년 낸 ‘은진이는 풍각쟁이’가 화제가 되며 이름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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