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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풍자시 한 수에 옥살이“…‘긴급조치9호 위반’ 천주교 수사들 42년만에 무죄
-유신헌법 비판 ‘서강대 필화사건’ 재심 끝 무죄
-法 ”긴급조치 9호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 침해“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민주를 잃은 자는 자유로써 승리하라.”

유신헌법을 풍자하는 내용의 시를 지어 주변에 알렸다는 혐의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며 실형까지 살았던 천주교 수사들이 42년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됐다. 지난 1976년 ‘서강대 필화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들에게 법원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14일 종교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검찰이 청구한 재심에서 지난 1976년 ‘서강대 제10의 역사연구 필화사건’의 당사자인 김정택 전 서강대 이사장과 김명식 시인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123rf]

당시 수사로 서강대에서 수학 중이던 이들은 지난 1976년 어느 날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갔다. 평소 자작시를 만들며 신문에 투고하던 김명식 시인이 정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시를 쓰고 주변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문제삼은 책은 김 시인이 자신의 공책에 직접 쓴 “제10장의 역사 연구”라는 25쪽 분량의 시집이었다. 시문 중 ‘자유만 못한 새 법을 붕괴시키소’, ‘이제 어느 곳에서나 자유는 들어설 자리가 없네’ 등의 문구가 당시 긴급조치9호를 위반했다며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공소장에 “피고인들이 5ㆍ16혁명으로 행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역행하고 언론탄압으로 국민의 입을 봉쇄했다고 그릇 속단하고 망상했다”며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국내 정세를 왜곡한 시문을 지어 주변에 배부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긴급조치9호 위반 혐의를 인정하며 시를 작성한 김 시인에게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 책을 주변에 나눠준 김 전 이사장 등에게 1~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수사들은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와 상고에도 김 시인는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고, 다른 수사들도 집행유예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억울하게 전과를 남기게 된 이들은 최근 검찰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면서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2월 검찰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법원은 지난달 6일 재심 끝에 김 시인 등 4명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억울한 첫 판결 이후 42년 만이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 김문석)는 “긴급조치 제9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위헌인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기소된 사건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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