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사는 전흥민(45)씨는 지난해 5월 사랑의장기기증본부를 찾아 사후장기기증등록을 했다. 부친이 지병으로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생사를 눈앞에서 직접 바라본 전 씨는 “결국 죽으면 세상에 하나 남지 않을 텐데, 몸뚱아리에 연연해할 필요가 있느냐”며 “나 하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새 삶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인도 서두를 것 없다며 반대를 했지만, 전 씨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서 지난해 8월 전 씨는 딸 민희(17)양과 함께 본부를 다시 찾았다. 민희양이 장기기증을 하겠다고해서 부녀가 같이 나온 사연은 이렇다. 전 씨가 어느 날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내다가 ‘장기기증, 각막기증’ 스티커를 떨어뜨렸고, 이를 민희양이 발견하게 됐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전 씨의 장기기증 사실을 집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를 따라 장기기증 등록을 하겠다고 선뜻 나섰다. 자신도 부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등록을 했지만, 막상 딸이 적극적으로 나오자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했다.
전 씨는 “성년이 되어서 해도 늦지 않으니 나중에 하라”고 권했지만 ‘부전녀전’이라 했던가. “아빠가 반대하는 것도 아닌데 이왕 하는 거 빨리 하고 싶어요. 살다보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잖아요.” 민희양은 바로 기증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부녀는 엄마 몰래 비밀스런 눈짓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다. 신청서를 우편으로 받으면 엄마가 먼저 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일산에서 서울 충정로 본부까지 직접 방문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지난 8월 민희양은 장기기증등록을 마치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엄마한테 쫓겨나면 어떡하지?”라고. 이에 전 씨는 “엄마한테도 이제 말해야지. 엄마는 당연히 알 자격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 씨는 2년 뒤 민희양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때까지 기증 사실을 부녀간의 비밀로 남겨둘 생각이다. 전 씨는 “어차피 주민등록증에 기증확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면 들통날텐데,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며 느긋해했다.
고3인 아들도 당장 등록을 하진 못 했지만, 입시를 끝내고 동참할 뜻을 내비쳤다.
전 씨는 “장기기증은 큰 일이 아니다”라며 “몇몇 친한 지인들에게 권유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등록한 사람은 없다”며 웃어보였다. 부인이 이 사실을 아는 날엔 전 씨 부녀에게 서운함이 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미리 얘기 안 한 건 서운할 수 있겠지만 좋은 일 하는데 아내도 이해할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이태형 기자 @vmfhapxpdn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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