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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스트 갓 파더’로 본 한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현주소
무성영화 시절 최고 전성기

세계적으로 찰리 채플린·Mr.빈 유명


한국선 ‘바보 캐릭터’와 함께

약자에 대한 배려 담아 교훈적


배삼룡·서영춘·심형래 뒤이어

‘달인’ 김병만 몸개그 계보 이어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 파더’는 지난 4일 누적 관객 수 130만명을 넘기며 흥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돌아온 영구를 보기 위해 관객이 몰리는 만큼 논란도 함께 부풀었다. ‘불량품이다, 아니다’란 문화 논쟁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솔직한 평가를 내놓는다. “2개의 파가 싸우는 것 같네요. 이런 파도 있고, 저런 파도 존재하고…. 문제는 코미디나 ‘팝콘 영화’에 대해 제대로 주목하지 않고, 그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아동용으로 한정된 일부 영화를 포함하더라도 현재 슬랩스틱(slapstick) 코미디의 대표작이라 꼽을 만한 작품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슬랩스틱 코미디의 영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라스트 갓 파더에 몰린 관심은 한 가지 물음으로 이어진다. ‘지금 슬랩스틱 코미디는 어디에 있나?’
심형래

▶영화에 소리가 없던 시절…슬랩스틱 코미디의 탄생=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10년대 슬랩스틱 코미디가 탄생했다. 그때 희극 연기자는 자신의 행동을 더욱 과장되게 연출하는 막대기를 가지고 다녔다. 툭툭 치는(slap) 막대기(stick)란 단어에서 슬랩스틱이란 용어가 탄생한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최고 전성기는 9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가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성영화밖에 없었을 때 배우는 표정과 몸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고전으로 자리잡은 명작 슬랩스틱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코미디 자체의 여흥 때문이라기보다 무성(無聲)이라는 기술의 한계 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버스터 키튼, 해럴드 로이드, 막스 브러더스 그리고 찰리 채플린까지. 슬랩스틱의 역사를 주름잡는 스타 코미디언이 은막 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연기, 세트나 영상기술에서 다른 영화를 압도할 만한 새로운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졌다. 이때 만들어진 영화가 지금 ‘예술영화’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짧았던 무성영화의 역사만큼이나 슬랩스틱 코미디의 호황은 길지 않았다. 영화기술이 진보하면서 유성영화가 바로 선보였다. 대화 중심의 코미디가 인기를 끌었다. 빠른 속도로 대사를 주고받는 만담 형태의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슬랩스틱은 코미디 주류의 자리를 스크루볼과 스탠딩 코미디(standing comedy)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평론가 이상용 씨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무성영화 시대가 아닙니다. 원형적인 의미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는 없지만, 몸개그로 번역되는 슬랩스틱의 요소는 한국의 버라이어티 쇼에서나 영화에서 살아 있죠. 영국의 ‘미스터 빈’은 무성영화적인 감성에서 에피소드를 찍기도 했고요.”
김병만

▶한국 슬랩스틱…바보 캐릭터가 중심=한국 슬랩스틱 코미디는 ‘바보 캐릭터’의 역사와 길을 함께한다. 순수하면서도 어수룩한 찰리 채플린에게서 그 계보를 찾을 수 있지만 한국산 슬랩스틱 코미디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약자에 대해 동정이나 배려가 강한 한국 특유의 문화가 슬랩스틱과 맞물린 바보 캐릭터에 투영돼 있다.

어설픈 약자지만 강자를 이기고, 강자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이 한국 슬랩스틱 코미디에 진하게 녹아 있다. 단순한 동작과 반복은 웃음의 필수요소. 그 속에서 배삼룡, 서영춘, 구봉서, 남철, 남성남, 심형래 등 슬랩스틱 코미디의 명장이 끊임없이 탄생했다. KBS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이끌고 있는 김병만 씨는 그런 한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계보를 잇고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심형래식과 김병만식 슬랩스틱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에 녹아있는 슬랩스틱은 분명히 예전 것입니다. 복고 또는 추억의 상품이라 할 수 있지요. 1980년대 말, 90년대 영구 시리즈를 봤던 사람들이 다시 가족을 이끌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겁니다. 얼마 전 개그콘서트 ‘달인’에 심형래 씨가 출연한 에피소드를 보면 심형래 씨의 개그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따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병만식 개그는 따라할 수 없지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니깐요.”

‘슬랩스틱 코미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진화할 뿐이다.’ 이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심형래식 개그가 김병만식 개그로 달라지듯 시대에 맞는 코미디언과 제작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무거운 조건이 뒤따르지만 말이다.

이상용 씨의 평가는 슬랩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케 한다.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해서 주는 감동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주는 감동과 재미는 살아있는 진짜입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구현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나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들에게 경탄을 보내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웃음과 눈물에 찬사를 보냅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맞고 그리고 웃기고. 슬랩스틱 코미디는 영원하다.

영화‘ 빈’, 몸개그의 달인 심형래, 남철·남성남 콤비, 영화‘ 마침내 안전’, 찰리채플린, 영화‘ 셜록 2세’, 영화‘ 라스트 갓 파더’.
‘명품’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는

▶버스터 키튼의 ‘셜록 2세(Sherlock Jr.)’=가난한 영사기사 버스터의 현실은 초라하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절당한 데다 도둑으로까지 몰린다. 하지만 꿈속에서 그는 멋진 탐정 셜록 2세로 변신해 자신이 누명을 쓴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기 시작한다. 버스터 키튼 특유의 무표정과 우아하기까지 한 몸 동작이 절정으로 표현된 영화다. 영화 평론가 이상용 씨는 “버스터 키튼이 보여주는 연기와 당시 세트가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해럴드 로이드의 ‘마침내 안전!(Safety Last!)’=일자리를 찾아 험난한 뉴욕살이를 시작한 로이드. 백화점 말단사원으로 일하며 근근이 돈을 모아 약혼녀에게 폼 나는 선물을 보낸다. 로이드가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할 줄 알고 있는 약혼녀는 갑자기 뉴욕을 방문하고. 로이드는 약혼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좌충우돌하는데…. 스턴트맨 저리 가라 수준인 해럴드 로이드 연기가 1920년대 뉴욕의 전경과 어울려 빛난다. 스턴트맨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 해럴드 로이드가 모든 연기를 직접 해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로완 앳킨슨의 ‘빈(Bean)’=영국 왕립 미술관의 말썽꾸러기 직원 빈. 그를 내쫓으려는 다른 직원들의 음모도 모른 채 명작 그림 ‘휘슬러의 어머니’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언제나 어설픈 빈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갖가지 사고에 휘말린다. 빈의 손에 맡겨진 명화의 운명은 안타깝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영국의 인기 코미디 TV 시리즈 ‘미스터 빈’이 영화로 무대를 옮겼다. 로완 앳킨슨 특유의 연기와 표정이 잘 녹아있는 영화.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newear@heraldcorp.com
[사진=헤럴드DB·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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