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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들, 인권이 뭔지 아니?
공동체를 아우르는 청소년용 인권 안내서

엄마가 나의 휴대전화 문자를 몰래 보셨는지 그동안 이성 친구를 사귀고 있었느냐며 꾸중을 하신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등교를 하는데,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대니 “청소년 입니다”라는 음성이 나온다. 교문에 들어서자 선도부와 선생님이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두발과 복장이 규정이 맞는지 점검한다.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선생님께서 들어와서 모의고사 등수와 성적이 적힌 표를 칠판 옆에 붙이고 나가신다. 등수와 성적을 보니 더욱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는 <청소년 인권 수첩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 공현 지음, 안미리 옮김, 양철북, 2011)>의 8장 ‘한국의 청소년 인권’ 부분에 나오는 대목을 종합하여 재구성해 본 것이다.


책에서 이미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의 청소년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 어쩌면 무한경쟁시대에 이들의 인권을 고민하는 것조차 이미 사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인권’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권은 아주 평범하고 작은 곳, 바로 자기 집 근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너무나 가까운 곳이고 너무나 작은 곳이어서 세계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곳이지요. 그렇지만 개개인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곳입니다. 바로 자기 집 주변, 자기가 다니는 학교나 대학, 자기가 일하는 공장, 농장, 사무실 같은 곳입니다 (37쪽).”


이처럼 이 책은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의 가치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차례대로 짚어나가고 있다. 인권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는 국제비정부기구(INGO),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유니세프(UNICEF) 등 다양한 단체들의 활동사항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이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흥미롭게 느낄 만한 주제들이 가득하다.


또한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다함께 고민해 볼 만한 한국의 청소년 인권 문제, 여성이 밤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권리, 양심적 병역거부, 용산 재개발 문제 등도 고루 다루면서 인권에 대한 논의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히 인권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을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권을 위한 다양한 실천방안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비자로서는 공정 무역 마크가 있는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또래들의 따돌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인권 보호 활동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를 ‘시민적 용기(Zivilcourage)'라 말하며 이처럼 인권 보호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왕따당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선생님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건 고자질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부탁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233쪽).”


간혹 설명이 부족하거나, 소개된 사례의 출처가 불분명한 점이 아쉽지만 <청소년 인권 수첩>이라는 제목 그대로, 청소년 독자들이 자칫 무척이나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인권’이라는 소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인권운동을 해 왔다는 공동저자가 한국 실정에 맞게 글을 다듬었다고 하니,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독자들이 ‘인권 감수성’을 키워볼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이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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