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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여년 농익은 웃음…폭소종결자들이 온다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서 오픈런 시작
고가 미술품 앞에 두고 금고만 찾는 어설픈 2인조 도둑

도둑보다 더 세상에 찌든 수사관 통해 씁쓸한 세태풍자

‘극단 차이무’ 민복기 대표 섬세한 연출로 ‘잔잔한 여운’


22년 전 늙은 도둑들은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에 처음 올랐다. 더 늙은 도둑은 배우 강신일, 덜 늙은 도둑은 배우 김기호, 수사관은 문성근이었다.

7년 후 소극장 공연과 전국 순회 공연을 할 때 더 늙은 도둑으로는 명계남이 나섰다. 덜 늙은 도둑은 박광정, 수사관으로는 유오성이 호흡을 맞췄다. 이후 정은표, 박진영, 박철민 등이 늙은 도둑을 거쳐가며 작품은 더 단단해졌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볼 만한 사람들은 다 본 공연이 됐다.

하지만 늙은 도둑의 얼굴이 바뀌듯이 풍자와 해학이 섞인 이야기는 공연이 거듭될 때마다 새롭게 덧씌워졌다. 대학로 공연 소식이 들려올 때면 관객들이 다시 모여드는 이유다. 

늘근도둑이야기는 섬세한 연출로 잔잔하면서도 오랜 여운을 남기는 민복기 극단 차이무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따뜻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늘근도둑이야기’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차이무극장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된다. 18일부터는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연이어 개막한다. 김승욱, 이대연, 김뢰하, 이성민, 박원상 등 12명의 배우가 네 팀으로 나뉘어 무대에 선다. 늙은 도둑과 덜 늙은 도둑, 수사관 3명이 공연을 이끌어가야 하는 만큼 배우 간의 호흡과 연기력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두 늙은 도둑은 사회보다 형무소에서 더 오랜 세월을 살았다.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는 두 사람이 감옥에서 특사로 나온 후 다시 한탕을 하기 위해 ‘그분’의 미술관 내부에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그분’의 집에서 두 도둑은 미술 작품 가치는 알아보지 못한 채 금고만 찾아다닌다. 하지만 금고 앞에서 다투다 경비견에 발각되고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게 된다.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수사관은 있지도 않은 범행 배후를 밝히려 애쓴다. 사상적 배경까지 캐는 수사관에 답하는 두 늙은 도둑의 막막한 변명은 쓴웃음을 선사한다.

더 늙은 도둑은 전과 18범, 덜 늙은 도둑은 전과 12범이다. 후줄근한 양복에 모자를 눌러쓴 두 도둑은 화려한 경력에 비해 흉악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눌한 두 도둑에 비해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할 수사관은 더 세상에 찌든 모습이다.

이 한심한 소동의 와중 두 도둑의 대사는 씁쓸하고 따끔하다. 더 늙은 도둑은 덜 늙은 도둑에게 말한다. “야 이놈아, 별 하나 더 다는 게 무섭냐. 유명한 사람들 김대중, 노태우, 전두환…열 중에 셋은 꽈자(전과자)야. 대통령 아들들? 홍업이, 홍걸이, 현철이, 재용이, 경환이, 건평이, 형 동생들 다 꽈자. 이름 대면 다 아는 국회의원에 건희, 몽구, CEO들, 영화감독, 배우들, 꽈자 아님 정치 못하고, 꽈자 아님 세계 일류기업 못하고 임마, 꽈자 아님 예술도 못하는 거야, 이놈아.”

이번 공연은 섬세한 연출로 잔잔하면서도 오랜 여운을 남기는 민복기 극단 차이무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더 조밀한 공연을 위해 어감과 상황을 약간 손보고 웃음뿐만 아니라 두 도둑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 집중했다. ‘따뜻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16일 예정된 트위터 시사회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공연 중 촬영과 전화를 사용해 트위터 전송이 가능한 이날 공연 후엔 민복기 연출과 김대연, 김뢰하, 최덕문 등 출연 배우가 함께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윤정현 기자/h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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