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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라일락 향기의 추억
류경기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장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 윤형주 ‘우리들의 이야기’다

세시봉 대표가수 윤형주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러주던 이 곡에서 잊을 수 없는 이름 ‘라일락’. 윤형주 노래도 이문세 노래도 듣고 있으면 라일락꽃 향기가 어느새 느껴진다. 계절의 여왕 5월이면 작은 골목길 담장너머에서 진하게 퍼지던 라일락의 진한 향기가 한강공원에서도 흐르고 있다.

라일락. 우리말 이름으론 수수꽃다리. 이름이 너무 예뻐 한 번 더 불러보게 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순박하고 예쁜 이름 수수꽃다리. 이 땅에도 자생하고 있었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다가 일제강점기 말 미국에서 ‘미스김라일락’이라는 종으로 바뀌어 다시 돌아왔고 라일락이란 이름을 알려나갔다. 수수꽃다리는 왠지 한강과 닮아 있다.

경제개발과 도시화의 숨 가쁜 시대가 이어지던 60년대 이후, 이 땅은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는 압축성장을 거듭해왔다. 이촌향도의 유래가 없는 빠른 도시화과정에서 서울은 1989년에 천만시민이 모여 사는 거대도시가 됐고, 한강은 급속히 늘어나는 서울인구를 위한 주택과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쓰였다. 한강양쪽으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등 도시고속도로가 자리 잡고 강 너머에는 성냥갑아파트가 병풍처럼 빽빽이 들어섰다. 서민삶의 애환과 기쁨을 나누던 동반자로서의 한강은 잊혀지고, 홍수 때마다 넘쳐나는 한강물을 막아내야만 하는 방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순박한 우리의 역사였던 수수꽃다리를 기억해낸 것처럼 21세기에 들어와 한강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했던 곳이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한 삶의 터전이었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여유를 즐길 수 있었던 곳이 바로 한강이다. 강원도에서 벌목한 나무를 서울까지 날라주었던 것이 한강이었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무참한 침입을 보고 있어야했던 곳이 한강이었다. 그 한강을 사람이 다시 찾게 하고, 자연성을 회복시키며, 문화와 역사를 되살리자는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한 문화를 살려내자는 문예부흥운동이 펼쳐진 것처럼 한강에 잃어버린 자연과 역사, 문화를 살려내자는 것이 바로 서울시가 힘을 모아 추진하고 있는 한강르네상스의 철학이다.

한강은 지금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생태계와 사람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41.5㎞ 물길 따라 꽃과 나무를 심는 생태공원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강에서 홍수를 막기 위해 둘러친 삭막한 콘크리트 호안을 자연석과 갯버들이 어우러진 자연형 강가로 바꾸어 사람이 물과 만날 수 있게 하고 있다. 자연형 강안을 따라 물고기에게 먹이와 수초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살려내고, 이들을 먹이 삼아 철새와 텃새가 살아갈 수 있도록 갈대와 물억새를 심고 있다. 이러한 자연을 살려내기 위한 땀의 결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09년, 한강공원에선 그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멸종위기동물인 ‘삵’과 ‘흰꼬리수리’가 발견됐다. 이들은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에 있는 육식계급으로서 한강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 작년에는 한강에 사는 새가 52종에 2만마리가 넘어 3년 만에 13종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한강공원 곳곳에서는 꽃과 나무를 심고 있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이제는 향기가 나는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향기가 진한 라일락을 곳곳에 심어 한강에 향기가 흐르게 하고 있다. 올봄 한강공원 곳곳에는 이미 4만주가 넘는 향기나무가 심어졌다. 수수꽃다리는 이미 본격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했고, 5월중에는 만발할 것으로 보인다. 뚝섬한강공원 자벌레 아래,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 여의도한강공원 원효대교~서강대교, 난지한강공원 자전거공원 주변에서 예쁜 보라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라일락의 향기에 취해보자. 어릴 적 골목길에서 만끽했던 라일락향기의 추억을 한강에서 만나보자.

이제 한강은 한강의 주인인 서울시민이 아끼고 즐기는 공간으로서, 아름다운 꽃과 초록의 나무, 물고기와 새가 함께 사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한강이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유럽의 전설에 따르면 꽃잎이 5개로 갈라진 수수꽃다리 꽃을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치 않는다고 하니, 올 봄 젊은 연인들이 한강공원에서 많은 사랑을 만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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