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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조학국 법무법인 광장 고문] 경쟁정책의 목표와 소비자후생
“나는 흔히 그 제단이 헤이그에 있다고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혹시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발행된 1907년 7월 5일자 ‘평화회의보’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왜 딱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모임의 평온을 깨뜨리십니까?”라는 기자 질문에 제2차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거부당한 우리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이위종이 답한 말이다.
그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도시라는 헤이그에서 지난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국제경쟁네트워크(ICN) 제10차 연차총회가 열렸다. 92개국에서 517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우리나라에서도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 5명과 비정부 자문그룹 멤버 6명이 참가했다.
금년은 ICN 출범 10년이 되는 해다. 세계 각국의 경쟁정책 관련 법과 제도의 조화와 수렴, 모범사례의 세계적 확산, 경쟁당국 간 국제적 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협의체로 현재 103개국 117개 경쟁당국이 가입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경쟁법 집행과 소비자 후생’이라는 특별 프로젝트가 어젠다에 포함됐다. 경쟁정책의 목적은 경쟁을 촉진,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이루는 데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키는 데 경쟁정책의 목적이 있다는 데 대해서도 대체로 이견이 없다.
문제는 소비자 후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며, 이를 어떻게 법에 반영할 것인가에 일치된 견해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제1조(목적)는 ‘소비자를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소비자보호와 소비자후생은 다른 것으로, 경쟁정책의 목표는 소비자보호가 아니라 소비자후생 증대라는 것이다. 이것을 계량화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으나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가치의 제품을 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소비자가 누리는 ‘소비자 잉여’를 소비자후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 경쟁정책 집행에 있어 소비자후생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경쟁법 집행 과정에서 소비자후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부당한 공동행위를 조사할 때 서민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품목을 먼저 조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기업결합심사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소비자후생에 미치는 효과를 그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경쟁정책과 소비자정책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도 경쟁정책의 소비자후생 효과를 극대화하는 주요 방안이다. 우선 경쟁법 위반행위와 관련하여 소비자가 소송을 통해 자신의 피해를 예방하고 손해를 손쉽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경쟁법의 사적 집행을 강화해야 한다.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동의의결제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로 조사받고 있는 사업자가 스스로 시정방안을 제안, 공정위가 그 시정방안의 타당성을 인정하면 위법 여부를 더 이상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동의의결안에 소비자 피해보상방안을 최대한 반영함으로써 공정위의 시정조치로 구제받을 수 없는 소비자 피해까지 구제받을 수 있다.
소비자후생을 고려한 종합적인 시장조사가 긴요하다. 경쟁정책은 공급자 입장에서, 소비자정책은 수요자 입장에서 시장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경쟁과 소비자정책을 연계할 때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소비자후생 증대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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