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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IMF총재, 도전이라도 해볼걸
라가르드 보은 따로 하고

일단 후보 등록했어야

5년 뒤 도전 유리해져

사전 조율 안된 게 유감




아쉽다, 참 아쉽다. 한때 한국인 후보자가 나와도 꽤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정력 부족인지 무산됐다. 지난 주말 후보 마감을 한 국제통화기금(IMF) 새 총재 경선이 막판 스퍼트를 한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등 3파전으로 끝난 것이다.

물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 특히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처음부터 확실성을 담보로 시작한 도전이 있었던가. ‘하면 된다’와 ‘해보자’ 정신이 주류였다. 그 결과 우리는 2차세계대전 뒤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로 부상했다. 정치체제면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이만큼 만든 국가도 별로 없다. 얼핏 보면 한심한 정치꾼들이 아직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보통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이들이 지지고 볶고 난 뒤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는 체제를 비슷하게나마 만들어낸 것이다. 여야 공수교대도 경험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이번 IMF 총재직 도전에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과감히 후보 등록을 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G20 의장국으로서 선진국 국가원수와 재무장관들을 서울과 경주로 불러들여 국제회의를 주름잡은 경험이 있다. 이른바 ‘옆방 외교’로 강대국을 요리한 선험자들이 즐비하다. 후보군이라면 당시 G20를 진두지휘한 사공일 무역협회 회장, 그를 도와 세계 석학과 재무장관 등 지인들을 설득하는 이면 외교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둔 영어 고수 박영철 서울대 명예교수, 이들이 나이 제한에 걸린다면 G20 회의를 실무 지휘한 소장파 이창동 서울대 교수 등이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다. 경제력도 세계 10위권대를 맴돈다. IT산업과 이른바 K팝은 세계를 계속 놀라게 하고 있다.

IMF는 2차대전 이후 세계를 석권하는 미국의 작품이다. 정치, 군사력뿐만이 아닌 경제력에서도 명실 공히 지도자가 되려는 미국은 실물거래를 장악하기 위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만들고 이에 따른 지불수단, 금융을 입맛대로 장악키 위해 IMF를 1946년 만든 것이다. 세계은행도 마찬가지다. 다만 미국 혼자 독식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IMF 총재직은 유럽 쪽에 넘겼다. 물론 본부는 워싱턴에 두기로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유럽 독식 비판 소리가 만만찮다. 신흥국이 IMF 총재직을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IMF가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편중 구제금융을 지원하자 더 심해졌다. 과거 한국 등 아시아 및 남미 국가들의 금융위기 때는 얼마나 가혹했던가.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가 도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때문에 신흥국 총재직 가능성 분위기는 꽤 높아진 셈이다. 그럼에도 후보를 내놓지 않은 우리에게 나름대로 이유가 없지 않다. 우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재선이 목전이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 국가 대사들이 얽혀 있어 IMF 총재직까지 도전할 경우 한국 독식 비판이 나올지 모른다. G20 의장국이 될 때도 시기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던 것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일찌감치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프랑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 지지를 공개한 게 우리에게는 쐐기였다. G20 회의 때 윤 장관을 도와 유엔 쿼터와 IMF 개혁으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쿼터를 늘리기로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라가르드 장관에 대한 보은인 셈이다.

지난 주말 사공일 회장은 몇몇 지인과의 점심 자리에서 다소 섭섭한 기색을 보였다. 어차피 나이 때문에 어렵고 개인적으로 워싱턴에 가서 또 5년 있을 생각은 없지만 한번 도전은 해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에 안 되더라도 그래야 다음 기회가 수월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관계자들 간 사전 조율이 안 된 게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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