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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가낙찰제 확대는 소탐대실…내년 확대 적용 철회돼야
이상일 ㈜정도설비 사장



‘제조일자를 확인하세요!’ 모 우유회사가 타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광고한 카피다. 현행 식품안전기본법상 유통식품에는 제조일자나 유통기한 중 하나만 표기해도 되는데, 이 회사의 경우 소비자 알권리와 자사제품의 안전성과 신선도를 홍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조일자와 유통기한을 모두 표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장 바구니에 담는 소소한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제품과 상품들에는 생애주기(LC : Life Cycle)와 관련된 제조일자, 유효기간, 사용기간, 유통기한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건축물에도 생애주기가 있다. 건축물의 탄생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 과정을 나타내는 건축물의 생애주기는 기획단계, 설계단계, 입찰 및 계약단계, 시공계획단계, 시공단계, 인도단계, 운영단계, 폐기처분단계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건축물의 생애주기 동안에 발생되는 모든 비용 즉, 기획ㆍ설계비, 건설비, 운용관리비, 폐기처분비 등에 소요되는 전체비용의 총합을 LCC(Life Cycle Cost : 생애주기비용)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물의 비용을 고려할 때 건축공사비 절감에 많은 관심을 갖지만 건축공사비는 건축물 생애주기비용에서 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수면 아래 숨겨진 보전비, 수선ㆍ운용비 등 운용관리비는 경우에 따라서 건축공사비의 5~6배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운용관리비를 절감하기 위한 핵심적인 사안이 건축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냉ㆍ난방, 급수ㆍ급탕, 환기ㆍ공조설비, 자동제어 등 기계설비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시키는 것이다. 건축물의 구성요소를 인체에 비유하면 기계설비는 두뇌, 신경, 순환기, 소화기, 혈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품질의 기계설비 시공과 유지관리가 건축공사비에 수배가 넘는 건축물 생애주기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상업 및 주거용 건물이며, 이들 건물이 2005년 미국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38.9%, 2006년 전체 전력 소비량의 72%를 사용하고 전체 CO2 배출량의 38%를 차지한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2009년 ‘제6회 국제녹색건축과 건축에너지 절약대회’에서 중국 건축물의 평균 수명이 심각한 날림공사로 인해 평균 25~30년에 불과하여 영국 132년, 미국 74년 등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비효율적이어서 연간 4억 톤의 건축물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축물의 생애주기가 짧고, 에너지소비에 따른 건축물의 생애주기비용이 많이 발생되는 우리나라도 항상 유념하여야할 문제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를 2012년부터 100억원 이상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공공공사에 투입되는 정부예산을 절약하고자 하는 의도이겠지만, 운용관리비용이 포함된 건축물의 생애주기비용 측면에서 볼 때 전혀 경제적이지 못하다.

최저가낙찰제에 따른 덤핑입찰은 비숙련기술자 고용, 저급자재의 사용 등 날림공사를 수반하고, 그에 따른 부실시공은 건축물의 성능을 저하시켜 건설 후 절약한 예산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한 부실시공에 따른 건축물의 생애주기 단축으로 인한 막대한 건축물 쓰레기 배출은 환경오염과 에너지낭비 등 천문학적 사회적 부대비용을 유발시키는데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국민의 몫일 것이다. 최저가낙찰제 확대는 반드시 철회되어야만 한다.

올해 1분기 건설업 생산과 투자가 주택경기 침체, 공공발주물량 급감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업 종사자들의 마음은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만큼이나 타들어가고 있는데, 이를 정부 정책입안자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장바구니를 맨 우리 어머니들은 가족 건강을 위해 먹을거리의 생애주기를 꼼꼼히 확인한다.

그럼 건축물은? 타 상품들과 비교해 가격으로 따지면 몇 천배이상 차이가 나건만 사람들은 건축물의 생애주기와 생애주기비용을 무시하고 건축공사비 절감에만 많은 관심을 갖는다.

당장 싼 건축물의 시공으로 현재 우리의 지갑은 적게 열리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 가족에게 잘못된 먹을거리보다 더 큰 상처와 경제적 지출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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