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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도가니’ 본질 제대로 못 읽은 사법부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 땅에 사법 정의는 죽었다는 사회적 분노와 회의가 끓어 넘치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직원들이 장기간 집단으로 장애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한 사건 자체만 해도 끔찍하고 충격적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을 화나게 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해당 복지재단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면수심 범죄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무기력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게 ‘도가니 열풍’의 본질이다.

인화학교 사건 처벌이 미약했던 것은 성범죄 피해자는 신고해야 벌을 줄 수 있는 당시의 법체계(친고죄)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를 판결에 참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가해자 10명 중 2명만 실형이 선고됐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 아예 처벌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황당하고 법 감정과 거리가 먼 판결이다.

사실 우리 법원은 성폭행범 처벌에 지나치게 온정적인 면이 있다. 지난해 아동ㆍ청소년 대상 강간범의 35%, 성추행범의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통계가 그 반증이다. 조카를 성폭행한 삼촌이 초범이라고 풀려나고,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보호자에게 양육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즐비하다. 깊은 고민과 성찰 없이 법 조문에 얽매인 관성적 판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는 국민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까닭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허술한 법망을 정치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법 개정으로 아동ㆍ청소년 성범죄는 친고죄를 없앴으나 공소시효 문제는 여전하다. 피해자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힘들게 지내는데 가해자는 버젓이 활보하게 둘 수는 없다. 공소시효를 대폭 늘리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

차제에 사회복지재단 운영 투명성을 높이도록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한다. 인화학원만 해도 아버지 교장과 아들 행정실장 등 족벌체제로 운영하며 장애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했다. 더욱이 인가 후에는 출연금 한푼 내지 않고 후원금과 정부 보조금만 챙기는 부조리를 빚어왔다. 공익이사 선임과 감독기능 강화 등 복지재단 운영의 전반적 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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