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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리비아 독재자의 최후와 재건 사업
42년 철권통치를 펴왔던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20일 마침내 최후를 맞았다. 그것도 끝까지 저항하던 고향마을 시르테 참호에서 찌그러진 얼굴로서였다. 마치 독재자 최후 모습의 본보기처럼 처참하게 죽었다. 지난 2월 15일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서 인권변호사 연행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지 8개월 만의 일이다. 모름지기 어떤 독재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례가 분명하지만 이번 내전에서 3만명 이상 사망자가 나온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
독재자의 처음은 누구나 명분으로 화려하다. 카다피 역시 그랬다. 부패한 왕정을 불과 27세 약관 나이로 대위 계급장을 단 채 무너뜨린 뒤 그는 한때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아우르는 새 인민권력체제(자마히라야)를 지향하는 혁명가 면모가 역력했다. 국민들 지지도 대단했다. 아랍민족주의자였던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를 멘토로 숭배하는 그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열강에 의해 갈갈이 찢긴 중동의 대(大)아랍민족국가를 추구하는 데야 아랍인들 누구도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독재자 일반이 그렇듯이 세월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권력의 맛에 심취, 팬암기 폭파 사건 등 국제 테러에 개입하는가 하면 재산 축적에 도가 트기 시작한 것이다. 7남1녀의 자식들까지 여기 가세, 리비아는 카다피 일가의 개인 소유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른 이들의 최후는 기정 사실이었다. 여기 비춰보면 북한 김정일 일가의 세습독재는 보다 교묘하고 영리하다고 볼 수 있다. 혹시라도 리비아 독재자 몰락이 핵무기를 포기한 결과라고 북한이 오판할까 두렵지만 제아무리 기를 쓰고 영리해도 세월 앞에, 또 세상 진리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과제는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카다피 사후 처리다. 오랜 독재와 내전의 상처는 국내 500여 부족의 난립과 더불어 치유가 쉽지 않다. 일단 민주주의 체제의 확고한 수립과 전후 복구가 급선무다. 시민군을 적극 도와준 영국, 프랑스는 물론 미국과 기타 유럽연합 국가 중에도 전후 복구에 연고를 주장할 여지가 많다. 특히 리비아 새정부가 발주할 건설시장의 1200억달러 규모 발주는 우리에게도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리비아 프로젝트의 30% 이상을 맡아왔던 우리로서는 지금이 바로 시장 회복의 호기다. 민관 모두 합심해 리비아 민주주의 체제 확립을 돕는 한편 수주 경쟁에도 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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