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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필리핀 에너지협력, K원전 동남아 진출 교두보 기대

필리핀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7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바탄 원자력발전소 재개 타당성 조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980년대 중반에 중단됐던 필리핀 바탄 원전 건설을 재개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한국수력원자력에 맡기기로 합의한 것이다. 온타임 온버짓(정해진 사업비로 적기에 시공) 경쟁력으로 중동·유럽에서 성가를 드높인 K원전이 동남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탄 원전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건설을 주도했으나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여파로 지금까지 미완공 상태로 남아 있다. 한국의 고리 2호기와 동일한 노형(가압 경수로형)이어서 고리 2호기를 40여 년간 운용해온 한수원이 누구보다 재건 타당성 평가를 잘 할 수 있다. 본계약으로 이어질 기대가 큰 이유다. 마르코스 정부는 ‘에너지계획 2050’ 아래 민도로섬과 팔라완주에 원전을 추가로 짓는 등 원전 총 3기를 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바탄 원전 재건의 성공적 완수가 추가 수주를 불러올 수 있다.

원전 협력에 가려졌지만 필리핀과의 핵심 원자재 공급망 협력 MOU도 고무적이다. 필리핀은 지난해 기준으로 니켈 생산 세계 2위, 코발트 생산 세계 6위 등에 자리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앞으로 한국 기업이 필리핀 광물자원 개발에 뛰어들 수 있도록 돕고, 공급망 위기 시 상호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니켈, 코발트는 반도체, 2차전지 등의 필수 소재이지만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이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공급선 다변화 차원에서 가까운 동남아는 큰 우군이다.

동남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로 수출 시장을 다원화할 기회도 잡았다. 원자력발전소 도입을 놓고 지난 6일 진행한 카자흐스탄의 국민투표에서 70%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2800㎿ 규모의 신규 원전 2기를 2029년 착공해 2035년 완공한다는 계획인데 원전 1기당 50억 달러(약 7조원)가 소요된다.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8월 한국의 한수원, 중국의 핵공업그룹(CNNC), 러시아 로사톰, 프랑스 EDF 등 총 4곳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중앙아시아 진출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체코 원전 수주때처럼 전 국가적 역량을 쏟아야 한다.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 중립, AI발 전력 수요 급증 등으로 원전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 주역이 되려면 내부역량을 더 강화해야 한다. 원전업계의 숙원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저가 수주’ 의혹으로 소모적 대립을 벌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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