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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서도 쫓겨나 2금융으로 전전…"쉽게 돈 벌려고" 중소기업에 문 걸어잠근 은행[약탈자가 된 은행]
1년새 4대은행 대기업대출 21% 늘었는데
중소기업 7%, 개인사업자 2% 증가 그쳐
중기대출 연체율 상승 우려에 대출 소극적
중소기업 자금사정전망은 갈수록 악화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 창구 모습.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제조업체 A사는 총 250억원 규모의 은행 대출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간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 12억~13억원에 달해서다. 최근엔 미래 먹거리를 위해 대대적 설비투자를 결정했지만, 신규 대출에 소극적인 은행들 때문에 자금 조달에 애를 먹었다.

결국 한 시중은행에서 120억원가량 대출을 받았으나, 담보를 껴도 대출금리가 6%에 육박해 한숨은 더 늘었다. 지난해 매출이 28% 늘어나는 등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은행 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고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 효과도 당장 체감되는 게 없어 답답함만 호소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로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눈을 돌리곤 있지만, 담보와 신용이 탄탄한 대기업 대출에 치중하면서 차입을 통한 자금조달이 절실한 중소·중견기업이나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년새 4대 은행 대기업대출 21% 급증…중소기업의 3배폭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기업대출 합산 잔액은 전년 동기(660조9830억원) 대비 10.0% 증가한 727조342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550조9105억원에서 596조1246억원으로 8.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하지만 대출 주체별로 뜯어보면 대기업 대출이 1년새 137조6053억원에서 167조2544억원으로 21.5% 증가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519조6128억원에서 556조2663억원으로 7.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개인사업자(SOHO) 대출은 265조8027억원에서 271조6772억원으로 늘면서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2.2%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전체 기업대출 가운데 대기업 비중은 1년간 20.8%에서 23.0%로 확대된 반면, 중소기업(개인사업자 포함) 비중은 78.6%에서 76.5%로 축소됐다. 개인사업자 대출 비중 역시 40.2%에서 37.4%로 줄어들었다.

‘불경기에 대출금 못받을까’…연체율 우려에 中企대출 소극적

소극적인 중소기업 대출로 인한 비용도 발생하고 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지키지 못한 12개 은행에 부과된 제재금은 3978억원에 달했다. 2022년(940억원)이나 2023년(1987억원)에 비해 제재금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한은의 ‘금융기관 여신운용규정’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이 원화대출 증가액의 50% 이상을 중소기업에 할당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제도 준수율을 보면, 6개 시중은행과 6개 지방은행의 평균은 각각 52.1%, 50.0%에 불과했다. 은행 2곳 중 1곳은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경기 부진에 따른 연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담보나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에 대출을 내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4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평균 연체율이 지난해 9월 말 0.10%에서 올해 9월 말 0.04%로 0.06%포인트 하락한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36%에서 0.43%로 0.07%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 3개 은행(신한·하나·우리)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을 보면, 0.40%에서 0.47%로 0.07%포인트 올랐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 창구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자금사정 전망 악화되는데…은행 외면시 차입비용 더 커져

문제는 이런 흐름이 장기화되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기업심리지수(CBSI)를 보면, 11월 중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전망BSI는 72로 전월 대비 4포인트 떨어졌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기업들이 향후 자금사정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더 높일 경우, 중소기업이 2금융권으로 넘어가면서 차입비용이 늘어난다는 문제도 있다. 금융위원회가 한국금융연구원을 통해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 중소기업 담보대출의 가중평균금리는 은행이 연 5.5%(신규취급액 기준), 저축은행이 8.3%(잔액 기준)로 분석됐다. 중소기업 신용대출 금리 또한 저축은행이 8.1%로 은행(6.1%)을 크게 웃돌았다.

금융당국은 중소·중견기업의 자금조달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5일 중견기업 간담회에서 중견기업의 수요가 높은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확대를 추진하고, P-CBO 이용금리를 낮출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금이 직접 P-CBO를 발행하는 내용의 신용보증기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위는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 채무조정 프로그램(새출발기금)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700억원 늘어난 5000억원을 편성했다. 또 혁신산업 육성 지원 및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자금 공급을 위해 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 3조원 규모의 혁신성장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한편, 은행권은 민생금융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올해 5971억원 규모의 자율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3분기까지 소상공인·소기업을 대상으로 이자 캐시백, 대출원리금 경감, 대출 지원 등을 통해 총 1402억원을 지원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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